얼마 전 발표된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과학경쟁력은 5위, 기술경쟁력은 14위로 상당히 높게 평가됐다.
외부 평가로 보거나 여러 객관적 지표로 보건대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어 기초연구의 성과물인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 수에서는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국제특허 출원 및 등록 수에서도 세계 4~5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각 부문 전문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우리나라 많은 분야가 그러하듯 과학기술도 그동안 압축 성장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들쑥날쑥한 면이 있다. 어느 쪽 수준은 매우 높은 반면에 상대적으로 낙후한 분야도 있다. 이 같은 불균형을 개선하고 조화롭게 발전시켜야 우리 과학기술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거기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으며 건강한 생태계를 이뤄야 하듯이 연구개발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꾸준히 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기초와 응용, 개발 연구 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 기술 따라가기에 급급해 응용 및 개발 연구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국내 제조업 생산기술은 급속히 향상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상황에서 이러한 `추격형` 연구개발 전략은 효용성을 다했다. 앞으로는 남이 갖지 못한 우리 고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탄탄한 기초와 기반 기술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는 선진국 대비 기초투자 비중이 빈약한 편이다. 관성에 젖어 정부마저 기초투자에 소홀히 한 탓이다.
둘째는 과학부문 저변 확대를 위해 풀뿌리형 일반연구와 우수 연구자를 위한 선도형연구 지원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한두 명의 천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한다.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 덕분에 애플이 세계 최고 회사가 됐고, 아인슈타인이 있어 인류가 우주 비밀의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에베레스트산이 높은 것은 히말라야산맥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튼튼한 저변 없이는 아무리 천재라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운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엔지니어 덕이다. 아인슈타인도 그를 앞선 많은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이용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이 사라지면 사자도 살아남을 수 없듯이 연구 생태계에서 탄탄한 저변은 우수한 연구성과 창출의 필수 기반이다. 우수 연구자에게 특별지원도 필요하지만, 과학의 저변 확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셋째는 소위 `빅 사이언스`와 `스몰 사이언스`의 균형적인 발전이다. 입자가속기나 천체망원경 같은 대형 장비는 그것 없이는 불가능한 최첨단 연구를 가능하게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스럽다. 반면에 소규모 개인연구는 세계 최첨단이 아닐 때가 많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보고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연구 지원에 적절한 균형을 취하는 것은 건강한 연구생태계 조성에 꼭 필요한 일이다. 분야별 균형을 갖추는 노력으로 건강한 연구생태계가 조성될 때, 우리 과학기술은 미래를 향해 희망적인 발전을 지속할 것이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sjoh@i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