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00만 시대가 열렸다.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기면서 인구 5000만을 돌파한 이른바 `20-50클럽`에 가입한 세계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는 설명도 따라 붙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빈국에서 벗어나 20-50클럽에 가입한 세계 유일 국가라는 찬사도 붙었다.
인구 4000만을 돌파하던 1983년 당시 분위기를 기억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중반 서울 동대문운동장 앞 광장에는 인구시계탑이 있었다. 이런 탑은 대학생들이 MT를 가기 위해 춘천행 열차를 타던 청량리역 광장에도 1985년 설치됐다. 그해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인구시계탑이 16개나 생겼다.
탑을 세운 건 대한가족계획협회였다. 탑 하나 설치하는 데 당시 돈으로 7000만원이 들었다. 50초마다 1명씩 늘어나는 우리나라 인구 증가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적지 않은 투자였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탑을 세운 목적은 인구 증가 억제였다. 그때 나라 정서는 지금의 축제 모드가 아닌 `이러다간 큰일 난다`였다.
격세지감이다. 4000만과 5000만의 의미가 29년 사이 전혀 딴판이 됐다. 인구 증가는 환경오염과 자연생태계 파괴를 유발하고, 식량부족과 자원고갈을 초래해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던 논리는 인구 5000만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를 심각하게 걱정할 처지다. 다만 29년 전과 정반대 의미로 `이런다간 큰일 난다`의 정서만은 아이러니하게도 같다.
통계상 우리에 인구 6000만 시대는 없다. 1.2명으로 떨어진 지금의 출산율로는 실현 가능성은 제로다. 역으로 40년 뒤에는 다시 4000만 미만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더 우울한 소식은 우리나라가 늙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분포 측면의 중간 연령층은 1980년 21.8세에서 2010년 37.9세가 됐고, 2040년에는 52.5세까지 높아진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지하철 좌석 3분의 2를 노약자석으로 채워야 할 판이다.
15~64세 연령대인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든다. 2010년 생산가능인구 3598만명을 100으로 놓고 볼 때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40년에는 2887만명인 80.2까지 줄어든다. 아시아권에서 이런 딜레마에 빠진 나라는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와 20년 장기불황 늪에 빠진 일본뿐이다.
생산성장률을 뛰어 넘는 인구성장률로 1인당 생산성이 하락할 것이라며 인구 자연증가 억제를 설파했던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이제 구문이 됐다. 오늘날 마이클 크레머의 성장이론이 그를 대체한다. 기술진보의 선행조건은 많은 인구다. 기술 진보율과 세계 인구의 성장률은 비례한다. 굳이 경제학 이론을 따지지 않아도 성장을 위해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윌리엄 예이츠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시 첫 구절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그는 노인을 하찮은 존재, 막대기에 걸린 헤어진 옷 같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으나 젊은이에게 없는 영혼을 가진 존재라 했다. 그래서 성스러운 비잔티움으로 갔다. 그곳에 간 노인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그 노인이 이대로의 우리나라에 온다면 그저 자식의 눈치를 봐야할 늙은 부양가족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이 흐름을 바꿔놓지 않으면 우리에게 성장은커녕 밝은 미래란 기대할 수 없다.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건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어렵게 얻은 5000만둥이 김태양 양이 맞을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달라도 크게 달라야 한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