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소금을 넣으면 간이 맞아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먹을 수 없다.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로,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다.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욕망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식지 않는 것이다.
욕망을 좇는 인간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이라고 했다. 반대로 이성과 논리로 생각하는 인간을 아폴로적 인간이라고 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역작을 통해 예술의 발전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두 개의 몹시 상이한 충동은 대체로 공공연히 대립된 채 서로 보다 힘찬 재탄생을 유발하며 공존해 간다는 것이다.
양극단의 중용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지나친 아폴로적 인간과 지나친 디오니소스적 인간도 문제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더 문제다. 지금까지는 아폴로적 인간이 디오니소스적 인간을 지나치게 지배해왔다. 인간의 잠재된 욕망은 분출 대상이라기보다 통제와 절제 대상으로 간주돼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문제는 디오니소스적 열정과 광기를 남의 눈치 때문에 아폴로적 인간으로 통제하려는 데 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머리로 생각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핑계를 찾아 합리화하려는 과정에서 아폴로적 인간을 등장시킨다면 오히려 그런 삶이 행복하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한 사람들이다. 성공해서 행복하기보다 행복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의 숨어 있는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열망을 추구하면서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진정한 자유는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미래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자유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의 존재 이유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머리로 계산한 자유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성취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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