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몸살`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몸`의 이상 신호가 `몸살`이다. `몸`이 이상하면 `몸살`로 신호를 보낸다. `몸`을 너무 많이 쓰면 `몸살`을 앓게 하고 `몸살`을 앓고 나면 `몸`을 정상 상태로 되돌린다. `몸살`은 그래서 `몸`을 보호하는 과정이다. `몸살`은 `몸`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그러니 `몸`은 마음과 `한 몸`이다. `몸살`을 앓는 동안 마음은 더 아프다.
`몸`의 아픔 뒤에 `몸`의 아름다움이 있다. `몸살`을 앓을 정도로 `몸`을 혹사시키는 사이, `몸`은 아픔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한다. `몸`을 혹사하면 `몸`이 쉬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몸살`이다. `몸살`을 통해 `몸`은 바닥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소진된 기운의 근원을 찾아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까 `몸살`은 지금까지 몸이 경험한 과도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몸을 재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온몸`을 던지는 `몸부림`치는 노력이 따르지 않고서는 위대한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살`은 `몸서리`치는 처절한 노력의 후유증이다. 밤잠을 설치는 고뇌, `온몸`을 던지는 처절하고 치열한 노력,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 뒤에 위대한 성취가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찾아온다. 그 미소 뒤에 `몸살`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몸부림`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만이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몸을 사리면서 고생하지 않고 쉬운 길로 가면 오히려 나중에 몸서리쳐지는 후회를 할 수도 있다. `아름다움`도 앓고 난 사람이 보여주는 `사람다움`이라고 한다. 즉 `앓음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몸`은 앓고 난 뒤의 아름다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름다운 사람은 몸부림치는 치열한 노력 끝에 찾아오는 후유증, 즉 `몸살`을 앓고 난 사람이다.
지금 나는 어떤 `몸살`을 앓고 있는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온몸을 던져 분투노력할 만한 대상과 영역이 존재하는가? `온몸`을 던져 추구할 만한 가슴 뛰는 비전과 목표가 있는가? 아니면 주어진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서리치고 있는가? 내가 보내는 시간 중에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가?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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