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이었다. 지난주 마무리된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를 보는 시선이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1번에 여성 과학자인 민병주 씨를 낙점했다. 보수정당에서 여성과 미래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변에 가깝다.
예상대로였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1번에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인 전순옥 씨를 배치했다. 전 씨는 고(故)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다. 18대에 이어 사회·노동운동가를 내세워 차별화에는 성공했지만 감동이 없었다.
상징성이 컸다. 목표는 여야 모두 현 정권과의 차별화다. 새누리당은 현 정권이 정보통신(ICT)·과학기술을 홀대한 만큼 이를 보완한 측면이 크다. 민주당은 기존의 노동과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비례대표가 무엇인가. 직접 선거로 소홀하기 쉬운 특정분야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춘 인재들을 고르게 발굴하자는 것 아닌가.
우문(愚問)일 것이다. 당연히 계층과 세대가 포함돼야 하며, 사회적 약자도 대변해야 할 것이다. 미래 정치 재목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여야 모두 철학은 담았으되 고민은 적었고, 통찰력은 없었다. 한 마디로 당파성만 부각됐다.
새누리당이 조금 앞섰다. 상대적인 얘기다. ICT·과학기술로 대변되는 미래를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의미다. 비례대표 1번에 민병주 씨를 배치했고 5번에는 강은희 IT여성기업인협회장을 낙점했다. 아예 지역구 의원후보를 뽑는 과정에서도 이공계 출신에 20%까지 가산점을 부과하는 등 파격을 시도했다. 타 전공에 대한 역차별이란 비난이 나올 법하다. 결국 새누리당은 박근혜 위원장을 포함해 비례대표 3인과 지역구까지 ICT·과학기술계 의원후보가 21명이 됐다. 4대강사업 등 토목건설에 치중했던 현 정권과 달리 미래와 고용문제를 ICT·과학기술로 풀겠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유감스런 일도 있다. 현 정권에서 미래부처 폐지에 앞장섰던 윤진식 후보를 공천한 것이다. 비례대표 1번 의미와 상충된다. 다만, 심학봉 후보를 비롯해 지역구에서의 서상기, 권은희, 배은희, 정갑윤 등의 역할이 기대된다.
반면, 민주당은 비례대표에 ICT·과학기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현 정권이 없애버린 미래부처의 부활을 예고한 상황이지만, 실제 비례대표에선 아예 푸대접했다.
일찌감치 노선투쟁에 몰두하면서 예고된 바다. 경선조작과 특정계파 독식 논란이 뒤따랐다. 대안정당으로서의 정책정당을 기대했던 대다수 국민의 눈높이를 외면했다. 경제민주화란 구호도 전문가를 배제함으로써 공허해졌다.
입법부 비례대표는 정당의 정책 바로미터다. 이미 여야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의 부활을 공언한 상황이다. 여당과 야당의 실천의지의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1번의 의미는 음미해볼 만하다. 현 정권에 원죄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차별화를 통해 미래를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비례대표에서 한발 뒤진 민주당은 정책에서라도 신발끈을 동여매야 할 것이다.
ICT·과학기술이 무엇인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당장 먹을거리인 동시에 미래 지식·창조경제의 성장동력이다. 고용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미래비전 차원에서도 역동적 해결이 가능하다. 통섭과 통찰력 차원으로서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미래를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지도자가 몇이나 되는가. 부국강병의 근원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여야가 좀더 거시적이고 창조적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현 비례대표 대진표의 의미는 결단코 넘어서야 할 것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