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업계 공정거래 공방 가열

중견기업과 대기업 간 날 선 대립

중견기업 청호컴넷과 대기업 LG엔시스·노틸러스효성 등 국내 금융자동화기기(ATM)업체가 두 진영으로 갈려 불공정행위를 따지는 등 날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청호컴넷은 최근 대기업 ATM업체를 입찰담합 및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대기업 측은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맞서고 있다.

청호컴넷 측은 대기업 계열 두 ATM사가 덤핑판매로 시장 경쟁을 어지럽힌 것은 물론이고 경쟁입찰에서 입찰가 등을 사전에 협의해왔다고 주장했다.

청호컴넷 관계자는 “정상가격 이하 판매, 가격담합, 무상 유지보수기간 늘리기뿐만 아니라 고객사 인테리어 및 회식비 지원 등 경쟁사의 불공정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런 불법행위는 단순한 매출 확대가 아닌 시장 지배력을 높여 청호컴넷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연간 규모 1300억원 미만인 국내 ATM 시장을 대기업 두 군데서 `나눠 먹기` 하기 위해 `청호컴넷 죽이기`가 진행된다는 주장이다.

LG엔시스와 노틸러스효성은 `적반하장`이라는 주장이다. 환류식모듈(BRM) 국산화에 실패한 청호컴넷이 가격경쟁력을 잃자 덤핑공세를 먼저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청호컴넷의 선제적 가격 인하로 적잖은 가격 손실을 입었다는 게 양사 주장이다.

LG엔시스는 “국산 모듈을 개발한 LG나 효성과 달리 일본 모듈을 사용하는 청호컴넷은 엔고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청호컴넷이 기존 거래처인 히타치를 후지쯔로 전환하는 등 무리한 전략 변경으로 경영난을 자초한 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LG엔시스와 노틸러스효성을 방문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ATM 업계 담합건이 2년 지난 후 결론난 사례를 미뤄볼 때 이번 제소건도 최종 결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ATM 업계에 악순환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호컴넷, FKM(청호컴넷에 인수), 노틸러스효성, LG엔시스 4개사는 지나치게 낮아진 장비 공급가격을 정상 가격으로 되돌리기 위해 담합을 시도하다 공정위에 적발됐다.

당시 자진신고를 하는 순서대로 과징금을 감면받는 제도(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일부 업체가 먼저 신고를 하면서 업체 간 감정싸움이 시작됐다. 이후 정체된 ATM 시장을 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적으로 저가판매를 시작했다. 장비 가격이 한때 1100만원 선까지 내려갔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판매금액은 ATM 한 대당 1700만원 선이다. 하지만 실제 판매가는 1300만원 정도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일부 은행에서 이뤄지는 역경매 입찰방식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관계자들은 ATM 업계 악순환을 해소하려면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상가격 이하 제품 판매를 업체 스스로 근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같은 출혈경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구매 방식 변화도 시급하다. 공급사 서비스 능력과 품질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만을 구매 기준으로 삼는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틸러스효성 관계자는 “절대권한을 가진 구매자와 정해진 소수 공급자 구도에서 공급자는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며 ATM 구매 관행 변화를 촉구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