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발전 등으로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에 대응하고 있지만 실제 발전량은 화력과 비교가 안 돼 걱정입니다. 정부가 제시한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자면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보다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최근 만난 한 발전사 임원은 RPS 대응에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토로했다.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하는 건 좋지만, 아직 현실적 여건이 제대로 안 갖춰져 발전사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너지 업계는 RPS 시행 전부터 기대보다 걱정의 목소리를 냈고, 일각에서는 수정이나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전면 시행보다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와 병행하는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이어졌다.
이러한 우려에도 별다른 수정 없이 추진된 RPS는 어느덧 시행 한 달을 넘겼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자인 발전사들은 과연 올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태로 어렵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2012년이 `성공적인 시행 첫 해`로 기록될 수 있을까.
◇올해 목표달성 전망 `흐림`=한국수력원자력·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지역난방공사·수자원공사·포스코파워·SK E&S·GS EPS·GS파워·MPC 율촌전력 등 13개 발전사는 올해 총발전량의 2%를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해야 한다. 7000~7300GWh에 이르는 상당한 발전량으로, 이후 비율을 매년 0.5~1%씩 늘려 2022년에는 10%를 충당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의무량 달성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과 5개 한전 발전자회사가 확보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약 1800㎿지만, 실제 운영이 예상되는 설비는 300~40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나머지 7개 발전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RPS 이행비용을 전기요금 인상으로 보전해주고, 발전사 의무공급량 20% 이내에서(시행 3년 이내에는 30%까지 허용) 다음해로 연기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이행비율 달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발전사가 추후 해결할 문제로 고스란히 남는다. 전기요금 상승으로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
부족분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로 채울 수 있지만 REC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1921㎿로, 2010년 대비 66㎿ 늘었을 뿐이다. RPS 대응을 위한 사업이 대부분 지난해부터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이미 FIT 적용을 받고 있는 셈이다.
◇태양광발전 보급도 `글쎄`=정부는 태양광산업 집중육성의 일환으로 RPS 시행초기 5년간 태양광 부문 의무량을 별도 배분했다. 정부는 최근 침체된 태양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올해 의무량 200㎿를 220㎿로 늘리는 한편 2013년 220㎿를 230㎿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과 2016년 의무공급 물량 일부를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앞당겨 배정한 것이다.
별도 의무량이 있는데다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어 태양광은 타 에너지원보다 설치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REC를 구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사실상 태양광 뿐”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업체 간 과당경쟁과 금융권 지원 부족 등으로 태양광 사업 추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RPS 태양광 REC 판매사업자로 선정된 업체 중 상당수는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망설이고 있다. 입찰에서 선정되기 위한 경쟁으로 REC 가격이 1㎾당 평균 220원으로 떨어져 수익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REC 가중치 0.7~1을 적용받아 사업을 하면 갈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가중치 1.5를 받기 위해서는 기존 건축물을 이용해야 하지만, 큰 공장이나 물류센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마땅한 부지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입찰에 참여한 총 10만4087.37㎾의 발전소를 지목별 가중치를 적용해 REC로 변환하면 9만5808.24㎾로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입찰에 성공한 사업자들이 부여받는 가중치도 평균 1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영세 중소 사업자는 금융권 지원 부족으로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렵다. 발전사와 REC 매매 계약을 맺어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발급받아도 정작 금융권에서 RPS 사업 자체를 모르거나, 상당한 선투자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해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FIT 재도입, 가능할까=정부는 REC 부족사태에 대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판단, FIT 설비 REC를 거래시장에 유통시킨다는 계획을 내놨다.
FIT 설비는 일부 정부지원을 통해 운영하고 있으며 원래 REC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정부 지원금 비율만큼 국가 REC로 정해 지식경제부·지자체에 할당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장에 충분한 REC 거래량이 확보되지 않거나 가격이 급변동하는 등 특정 상황에서만 REC를 판매한다. 판매 수익은 전액 국고로 환수하고 3년이 지나도 판매되지 않는 REC는 폐기한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효과가 의문스럽고, 무엇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증대라는 RPS의 기본 취지와 동떨어진 `눈 가리고 아웅`식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FIT 재도입이다. 특히 RPS와 FIT를 병행 실시하자는 주장이 많이 제기된다. RPS 전면시행에 따른 부담은 줄이고 두 제도의 장점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희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RPS 시행과 재생에너지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RPS와 FIT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제도가 우수한지 논의를 반복하는 것보다 어떻게 두 제도의 장점을 조합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유럽·미국에서 정책 조합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RPS와 FIT를 병행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일방적인 FIT 폐지와 RPS 도입 추진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르며, 이는 각기 다른 제도를 운영하던 선진국들이 새로운 제도로 전환을 추진하기보다 두 제도의 장점을 조합해 보다 나은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RPS 연도별 총 의무공급량 수준(단위:%)
자료: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