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방통위]<중>힘잃은 조직

 지난해 2월 KBS 수신료 인상안을 다루던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 한 상임위원이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인데 주요 사안마다 표결로 끝내자면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안건은 다섯 상임위원 가운데 한 명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3인 찬성, 1인 반대라는 기형적인 구조로 처리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08년 출범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방송과 통신 융합조직, 민간과 정부 조직 간 통합이라는 점은 물론이고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전에 없던 조직형태에 우려가 많았지만 방송통신 환경 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기대가 더 컸다.

 ‘융합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국민이 보다 풍요로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립 목적이 실현되기를 방통위 직원과 관련 업계도 희망했다. 최시중 위원장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조직인 만큼 좋은 선례를 만들자며 방통위 간부와 직원을 독려했다.

 하지만 방통위가 지향한 ‘합의제’는 정작 주요 쟁점사안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방통위 출범 이후 주요 쟁점사안 회의는 대부분 다수결에 의해 무늬만 합의가 도출됐다. KBS수신료 인상안이 그랬고 지방 MBC 합병 허가건, 종편 선정 일정안 등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연말에는 KT 2G서비스 종료 승인건을 놓고도 표결이 이뤄졌다. 방송통신 규제와 진흥을 담당할 정책부서를 합의제로 만든 데 그 원인이 있다.

 표결 구도는 늘 같다.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측 상임위원 3인은 항상 의견을 같이 한다. 야당 측 상임위원 2인은 여당 측 위원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당연히 표결결과는 3 대 2로 여당 측 상임위원이 내놓은 의견으로 귀결된다. 간혹 야당 측 위원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아예 퇴장하기도 한다.

 방송과 통신 관련 정책 결정이 각 상임위원의 신중한 판단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적 배경에 따라 이뤄진다는 비난을 받는다.

 합의제가 신속한 정책 결정을 가로막는 비현실적인 제도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이 밤을 새가며 안건 보고준비를 마쳐도 상임위원간 조율이 안 돼 회의 일정이 조정되면 정책결정은 그대로 지연된다. 때로는 사무국 의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건이 흘러가기도 한다.

 정부 업무평가 성적도 좋지 않다. 방통위는 2011년 정부 업무평가에서 전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미흡’ 판정을 받았다.

 비효율적 조직 운영에 업무마저 부정적인 평가를 받자 직원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습사무관들이 방통위를 선호하는 이유는 세종시로 이전하지 않고 수도권(경기도 과천)에 남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차기 정부 때 방통위가 그대로 유지되겠나”라고 서로 반문한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비리의혹은 그나마 묵묵히 일하려던 직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방통위 한 주무관은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본 사람 한 명 때문에 전체 조직이 비난받으니 허탈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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