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스마트워크와 직립보행

약간 충격적이었다. 전자신문이 지난주 연재한 특별기획 `스마트코리아 2020`를 보고 전화와 이메일로 전해 준 독자들의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우리의 잘못된 근로 방식에 대한 고발과 자성이 이어졌다.

한 젊은 게임 개발자는 고백했다. 새벽까지 일하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예사지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6시간도 안 된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의 진술은 이렇다. 새벽 2~3시에 회사 간의침대에서 잠들어 일어나면 보통 오전 8시다. 회사에서 대충 씻고, 아침을 먹고 9시30분쯤 자리에 돌아온다. 간밤에 뒤척인 바람에 머리는 멍한 상태다. 이메일(페이스북) 체크나 인터넷 서핑으로 워밍업하다 보면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돌아온 뒤에도 비슷하다. 간밤에 못 잔 잠이 식곤증으로 몰려온다. 인터넷 서핑 등으로 잠을 쫓다보면 어느새 2시를 넘긴다. 그나마 오후 3시에서 6시까지는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일은 거의 진척되지 않은 상황. 저녁 먹고 돌아와 8시부터 다시 야근에 돌입한다. 하지만 저녁시간은 느슨하다. 잠깐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긴다. 또 회사에서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사장은 회사에서 밤을 샌 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소프트웨어, 컨설팅 등 다른 업종 종사자들도 `야근의 패러독스`를 꼬집었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 때문에 아침 시간은 거의 비몽사몽하면서 보낸다는 것이다. 모두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근무시간=성과`로 여기는 경영진 앞에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올해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위에 뽑힌 SAS의 짐 굿나잇 사장은 “가능하면 야근을 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비즈니스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SAS 직원들은 주당 35시간을, 그것도 근무시간을 자기가 정해서 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76년 설립된 이래 34년간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이 매년 평균 15% 정도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3억1000만달러였다. 부채 또한 없다. 노동의 양보다 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CEO의 철학이 빚어낸 눈부신 성과다.

사실 세상은 변했다. 노동시간이 바로 생산량과 직결되던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는 하드워크(hard work)가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이 엄청난 돈을 벌어주는 지금은 다르다. 맑은 정신으로 얼마나 똑똑하게 일(smart work) 하느냐가 관건이다.

`스마트코리아 2020` 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은 스마트워크의 성공은 결국 문화(culture)와 행동(behavior)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근 안 하겠다” “재택 근무하겠다” 등의 말을 꺼내면 여전히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문화로는 곤란하다.

이각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은 “스마트사회는 문명사적 대변혁”이라고 했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문명사의 기원을 되돌아보자.

네발로 기어 다니던 유인원은 어려운 직립 보행을 시작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맹수를 잡을 수 있는 막대기나 도끼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조그만 행동의 변화가 역사를 새로 쓴다.

장지영 컨버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