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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과 `상생 경영`을 펼치라는 외부 압박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마음이 편치 못한 건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실질적인 협력업체로 위상을 높여야 하는 데 파트너로 부르기에는 2%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손창록 중소기업유통센터 사장(65)이 제시하는 해법은 `발상의 전환`이다.
“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불균형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균형이 깨졌는지 먼저 따져 봐야 합니다. 단순히 대기업 배려만 원한다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대기업도 넘볼 수 없는 중소기업 고유의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대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런 균형이 가능합니다.”
손 사장의 충고를 무시할 수 없는 건 과거 경력 때문이다. 손 사장은 유통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롯데백화점 사번 `1번`으로 출발해 롯데에서 22년, 그랜드백화점에서 총괄 사장으로 14년을 몸담았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대기업 주도의 백화점 업계에서 규모와 브랜드·인지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랜드백화점만의 입지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에는 36년 백화점 생활을 정리하고 중소기업유통센터를 맡아 6개월 만에 센터를 완전한 흑자 구조로 바꿔 놓았다. 경기가 아직 회복 중이지만 상반기 2444억 원으로 전년 매출의 70% 이상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도 232%로 늘리면서 새로운 경영 이정표를 만들었다.
비결은 하나였다. 발상의 전환 즉 생각하는 방식을 `180도`로 바꿨다. “지난해 말 확정한 올해 사업 계획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였습니다. 2009년에 비해 경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당장 월급을 10% 깎자고 했습니다. 당연히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럼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고 3%로 수정해 왔습니다. 물가 상승률이 5%인데 3%를 잡으면 마이너스였고 아예 100% 성장이 목표라고 못 박았습니다.”
손 사장은 “과거와 비교해 5~10% 가량 매출을 늘리기는 힘들지만 오히려 100%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배 이상 늘리기 위해서는 관행을 깡그리 무시해야 합니다. 일을 대하는 임직원 태도와 자세에서 경영 방식, 프로세스 모두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경영 혁신을 위해 손 사장은 제일 먼저 현장을 다그쳤다. 본인 표현대로 “현장을 제대로 아는 CEO가 설쳐야 변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유통센터는 중소기업청 산하지만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독립 채산 기업입니다. 그러나 내부 분위기는 공기업 색깔이 강해 효율보다는 관리 위주였습니다. 인력 수준은 뛰어나지만 동기 부여도 약했습니다. 결국 잠재력을 깨워주려면 리더가 설치고 돌아다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영 슬로건도 뜯어 고쳤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도록 현실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라. 완벽하게 상대를 설득할 이론이 없으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간절하게 바라고 일에 몰두하면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선물을 받는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런 식이었다.
공기업과 달리 엄격히 상벌 제도를 만들고 과감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우수 직원에게 해외 연수를 보내고 백화점 매장 직원에게도 좋은 실적을 내면 월 최고 30만원까지 보너스를 지급했다. 100만원이 월급이 이들에게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가능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의사 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책상머리보다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보완하도록 근무를 체계화했다. 해외 판로를 열기 위해 인턴사원을 채용했는데 목표를 달성하면 모두 정규 직원으로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산과 고용 제약을 받는 공기업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사장 자리를 건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움직이면 회사는 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중요합니다.” 손 사장은 “IT·자동차·유통 등 분야는 다르지만 경영은 대부분 엇비슷하다”며 “중소기업은 제일 먼저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이고 자꾸 기존 관행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