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 서적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가 서점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딱딱한 주제의 책이지만 출간 한달만에 5만부가 팔려 나갔고, 벌써 12만부를 넘었다고 한다. 인문학 분야에서 1만권을 넘으면 베스트셀러로 불리는데 이렇게 많이 팔린 현상에 대해 서점가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덜 미국 하버드대 교수 강의를 정리한 400쪽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분량도 만만치 않지만 다소 철학적인 내용을 다뤄 쉽게 책장이 넘어 가지 않는다.
다루는 주제가 광범위하지만 기업 CEO와 임원이라면 한 번쯤 고민할만한 내용을 담았다. 가령 마실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십 배 가격을 높이는 게 옳은 것인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을 위협하는 자동차를 설계하는 게 정당한가, 공기업 고위 간부가 거액 보너스를 받는다면 과연 합당한가라는 식의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해답은 주지 않는다. 샌델 교수 본인의 입장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지 문제를 풀어 나가는 사유 과정을 보여 줄 뿐이다.
비록 일부지만 센덜 교수가 제기한 문제는 기업 현장에서 풀리지 않는 딜레마와 같다. 한쪽에는 기업 본연의 존재 가치인 이윤 추구, 이에 따른 가치 창출과 지속성장이 자리를 잡는다면 또 한 축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과 의무, 공공성 추구와 사회 환원이 버티고 있다. 기업은 중간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인다.
분명한 점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성장이 기업의 최고 가치였다. 약간의 변칙과 편법이 있더라도 성장이라는 결과물을 얻는다면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성장했는지 과정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기업 규모와 성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사상 최대의 이익 못지않게 사상 최대의 기부를 했다는 소식에 더 열광한다. 한 마디로 ‘정의’가 살아 있는 기업을 원하는 세상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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