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만 타이둥현 산간벽지 우링(武陵) 초등학교.
부눙쭈(布農族)라 불리는 대만 원주민들이 다니는 산골 학교에 백명원 LG 대만법인장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백 법인장은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유창한 중국어와 대만 현지어로 "좋아하는 야구선수는 누구?" "공부는 잘하고 있어"라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처음엔 어색해 하던 아이들도 "바이둥, 바이둥(백 법인장 애칭)" 하면서 금세 따라붙었다.
백 법인장이 "너희들도 공부 열심히 하면 커서 나처럼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단다"고 말하자 원주민 아이들 눈망울은 금세 초롱초롱해졌다.
우링 초등학교 학생과 유치반 전교생 105명 가운데 103명이 이른바 대만 소외계층에 속하는 부족민 출신이다. 대만에는 14개 소수 부족이 있고 인구 2400만명 가운데 약 5%가 부족민 출신이다.
백 법인장이 자원봉사 활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지난해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에도 경제위기가 몰아닥치자 35개 학교 학생 1500명 1년치 점심값과 교육비를 지원했다. 대만에서 LG휴대폰 1대를 팔 때마다 대만돈 10원(약 350원)을 적립했다.
돈만 지원한 게 아니다. 백 법인장이 매월 전국 각지를 돌며 벌써 15개 학교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올해부터는 산간벽지 원주민학교를 대상으로 전통문화 계승 지원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대만 핑둥 지역에 400여 명 목숨을 앗아간 대홍수가 났을 때는 백 법인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LG 드럼세탁기 100대를 동원해 무료 세탁방을 설치했다. 백 법인장은 현장에서 직접 전기와 수도시설을 확인하고 세제와 소독약을 지원했다. 파나소닉 등 경쟁업체들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였다. 수재민들은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준 LG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현지 언론들은 "마잉주 대만 총통보다 백 법인장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해 수해 발생 지역에서 팔린 세탁기 중 60%가 LG 제품이었다.
이 같은 백 법인장 선행은 `자비심+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합쳐진 결과다. 어느 것이 앞선다고도 할 수 없지만 `덕도 쌓고, 장사도 한다`는 고객지향적 사고인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한국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은 지 18년이나 지났지만 대만 사람들 뇌리에는 여전히 한국을 싫어하는 감정이 남아 있다. 수출시장은 물론 야구 등 스포츠에서도 경쟁관계다. 삼성 LG 등 세계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한국 글로벌 브랜드가 대만에선 유독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백 법인장은 "지난해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위기는 기회라고 판단했다"며 "공격적 마케팅을 전개해 브랜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LG 대만법인이 내건 공익 캠페인 구호는 `미소소태양(微笑小太陽)`.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태양과 같은 LG라는 의미로 LG 로고를 상징한다. TVBS 등 대만 주요 현지 언론들도 이 같은 백 법인장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했다.
LG 대만법인이 수해 때 지원한 소식에 대해 한 대만 네티즌은 "왜 대만 전자업체가 전 세계 시장에서 존재가 없는지 이제야 알겠다. 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한국을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LG 만세!!!" 라고 글을 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백 법인장이 처음 대만에 왔을 때 시장점유율 7위에 불과했던 LCD TV가 올해엔 1위로 성큼 올라섰다.
[매일경제,타이둥(대만) = 이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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