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새판을 짜자](1) 큰 그림이 없다

전략과 정책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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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우리만 머뭇 거린다. 지난 10여년간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 신화를 쓴 주인공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당장 돈이 되는 제조업과 하드웨어(HW)에 매달려 우리의 '생각'을 키우고 '창의 산업'에 눈을 돌리지 않은 결과다. 미래기술과 새로운 융합비즈니스가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이를 먼저 읽고 책임감 있게 댕응할 정책 당국도 없다. 선도가 아닌 따라가는 전략으로는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는 요원하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 사라진 우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발전적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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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때에는 부처 간 치열한 영역 다툼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방관하기 일쑤입니다. 미래산업 정책을 주도할 주체가 뚜렷하지않다 보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정부 한 고위 관료가 최근 사석에서 허심탄회하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옛날보다 일하기 좀 편해졌다는 농담도 건넸다.
전문가들은 최근 '아이폰 충격'으로 야기된 한국 미래 위기론의 핵심은 전략과 정책의 부재라고 입을 모은다. 각 부처는 저마다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열심히 정책을 개발한다. 하지만 통찰력 있게 미래 흐름을 예측해 비전과 전략을 만들고 정책을 한발 앞서 실행할 주체가 없다 보니 단편적인 접근만 이뤄진다.

지난해 말 어렵게 빛을 본 '범정부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 육성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2의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장에서 활성화 대책 요구가 쏟아졌지만 리더십을 가진 주력부처가 없어 허송 세월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서비스에 치우친 정책을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는 각각 연구개발(R&D), 공공분야 정책만 내놓았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구글, 아마존, 세일즈포스닷컴 등이 수천억원의 시장을 창출했다. 일본 정부도 작년 상반기 '가스미가세키 클라우드'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발표 2015년까지모 든 정부 정보기술 시스템을 단일 클라우드 인프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교수는 '산업계와 언론의 비판을 받자 정부가 부랴부랴 작년 말 범정부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 며 '클라우드 컴퓨팅은 네트워크⋅서비스⋅R&D⋅공공 등에 걸친 대표적인 융합산업인만큼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리더십 부재로 무색무취의 정책만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아이폰 충격'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통신서비스 중심의 무선인터넷 활성화 대책을, 지경부는 단말기와 SW 중심의 육성책을, 문화부가 모바일 콘텐츠 전략을 제각각 내놓았다. 하지만 통신서비스⋅ 단말기⋅SW⋅콘텐츠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한눈에 조망해 만든 비전 아래 나온 실행 계획은 아니다.

김성조 한국정보통신학술단체 협의회장(중앙대 교수)은 "'아이폰'에 뒤진 것보다 더 큰 문제는'포스트 아이폰'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미래 산업은 IT산업 간은 물론이고 제조⋅건설 등 전통산업과 융합이 불가피한데 이를 총괄 기획할 조직이 없어 만년 후발주자가 될 처지"라고 꼬집었다.

u시티처럼 세계 첫 상용화로 시장을 선점하고도 방향성을 잃는 사례도 있다. 국토해양부와 지경부가 영역다툼 끝에각각 'u시티플랫폼'을 나눠 개발하기로 했으나 최근 지경부가 R&D사업을 중도 포기, 국토부의 R&D도 타격을 받게 됐다.
앞선 기술 리더십과 비즈니스 모델로 다른 나라와 격차를더욱벌려야 하는 시점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대학원장은 "이명박정부는 '융합'을 키워드로 각 부처 속으로 IT 관련 조직을 흩어놓았지만, 각 부처가 여전히 전통산업에 무게를 둬 미래 융합 산업이 후순위로 밀리는 일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주상돈 담당(팀장)
심규호⋅권상희⋅정지연⋅이진호⋅장동준
장지영 기자 mira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