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디스플레이의 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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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잔인하게 진압당하면서 온 국민을 좌절시켰던 지난 1980년, 의도적이었을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 삶을 크게 바꾸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컬러 방송의 시작이 그것이다. 그 당시 컬러TV에 대한 로망은 최근 젊은이들이 3D 영화에 열광하는 것 이상이었다. 가정마다 당장 컬러TV를 사자고 졸라대는 자식과 좀 더 기다리자는 부모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흑백TV를 벗 삼아온 국민들은 컬러TV 방송을 보면서 흑백TV에서는 분간되지 않았던 땀과 피의 차이를 생생하게 실감했다. 컬러TV는 사회 곳곳에 변화를 일으켰다. 우스갯소리로 꿈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야는 패션과 디자인 분야다. 한 미술가는 “컬러TV 방송이 10년만 일찍 시작했더라도 우리나라 디자인 경쟁력은 훨씬 앞서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 금성사(현 LG전자), 삼성전자가 컬러TV를 판매했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소니·내셔날(파나소닉) 제품을 선호했다. 수입선 다변화 품목에 지정돼 직접 수입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일부 시민들의 집에 놓인 소니나 내셔날TV를 보며 국민들은 화질 차이에 감탄했다. 일본산 TV의 강점은 브라운관이었다. 트리니트론으로 대변되는 소니의 브라운관은 국내 기업에게 철옹성이었고 브라운관 TV가 주역이었던 20세기까지 그 벽을 넘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기업들은 세계 TV 시장 최강자다. 그 이면에는 지난 98년부터 세계 1, 2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해온 LCD가 있다. LCD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국내 TV기업의 이 같은 기적을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해 LCD 등 디스플레이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7%를 차지, 4위에 올랐다. 반도체가 세계 1위라고 하지만 그건 메모리 분야에만 한정된다. 반도체는 장비, 소재 분야의 국산화율이 20%에 그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 분야는 60∼70% 육박한다. 전후방 산업효과도 반도체를 압도한다. 반도체산업에서 경험한 국산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종사자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상생이 만들어낸 결과다.

 디스플레이 업계와 학회가 산업의 위상을 홍보하고, 종사자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디스플레이의 날’ 제정을 추진 중이다. 디스플레이 1위 달성에 기여한 사람에게 훈포장을 주고, 현역을 떠난 선배들이 그간 이룬 성과를 후배들도 공유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번번히 정부로부터 퇴짜를 맞는다. 주관부서인 행정안전부는 “기념일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정부 훈포장의 권위를 지키겠다는 행안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날, 반도체의 날, 조선의 날 등 수 많은 기념일을 허용하면서 디스플레이는 안된다는 입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 프렌들리’ ‘신성장동력 육성’ ‘고용 제일주의’를 외치는 MB정부의 정책과도 상충된다. 오늘도 세계 TV 시청자의 절반이 우리나라 LCD로 만들어진 삼성과 LG TV로 세상과 접한다. 한국산 LCD는 프리미엄 제품의 상징이 됐다. 실용정부다운 결단을 기대한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