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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 중 세계 1등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 산업은 1972년 정부가 조선을 중화학공업 중 핵심 산업의 하나로 선정해 중점 지원하기 시작한 제3차 경제개발계획을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지난 1978년 6억4800만달러로 세계 시장의 4.5%를 점유하면서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명함을 내밀었고, 2001년에는 무려 207척을 건조하며 세계 시장의 38%를 점유해 세계 조선 제일국으로 우뚝 섰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국제경기의 급락과 중국 조선 산업의 성장으로 현재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일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우리는 유럽이 선박건조 분야를 일본과 한국에 내주고도 지금까지 30여년간 조선 산업 전체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조선 산업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시대에 맞게 선박기자재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그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박건조 능력 확대에 힘을 쏟던 1995년부터 유럽은 차세대 조선 산업을 선도할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e내비게이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e내비게이션은 전 세계 선박을 육상에서 모니터링하고 육상과 해상 양방 간, 또 선박 내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각종 정보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양 환경 보호와 안전 항해를 도모하는 새로운 선박운항 체계를 말한다. e내비게이션은 한마디로 선박은 단순 쇳덩어리가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움직이는 컴퓨터 터미널’이라는 개념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산하 여러 단체는 2012년부터 e내비게이션을 시작하기 위해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세계 선진 해운국은 이러한 새로운 선박운항 체계 시장 선점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선박전자산업과 해상통신산업을 육성하고 융합IT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자동차, 조선, 건설, 섬유, 의료, 기계 등 전통 주력 산업과 IT융합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2010년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신규지원’ 대상과제를 보면 전체 164개 과제 중 앞서 언급한 6개 주력 산업과의 융합IT 과제는 10개 6.1%에 불과하며 이중 조선 융합IT 과제는 단 1개(0.6%)뿐이다.
조선 산업은 전후방 산업에 파급효과가 크다. 그동안 이룩한 조선 산업 인프라를 활용하고 IT강국의 기술력을 융합하면 유럽이 선박건조 산업을 아시아에 넘겨주고도 세계 조선시장을 선도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앞으로 30년 이상 세계 조선의 중심이 될 수 있다. e내비게이션 시대에 조선 융합IT를 우리가 선도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 개발과 원천기술 확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다.
조선업 종사자가 21만여명에 이르고 세계 선박건조 능력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 일등국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말만 무성한 융합IT 지원에 그치거나 실제 융합IT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이룬 세계 일등 산업도 쉽게 빼앗기게 된다.
유영호 한국해양대 컴퓨터·제어·전자통신공학부 교수 yungyu@h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