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아이템 거래라는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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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아이템 거래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공개되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리니지 게임머니의 이용자 간 매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아이템 거래를 둘러싼 지난 10여 년 동안의 논란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진다.

 판결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롤플레잉게임(RPG)의 게임머니는 이용자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사행적 우연성과 관련이 없다. 둘째,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에 의해 획득된 게임머니는 이용자 간 매매가 가능하다. 이로써 그 동안 ‘그레이존(회색지대)’속에서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간주돼 온 1조5000억원 규모의 아이템거래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

 이러한 아이템거래에 대한 관점은 2007년 2월 필자가 전자신문에 ‘아이템거래라는 판도라상자’라는 컬럼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그 컬럼에서 필자는 게임산업진흥법 내에는 ‘누구든지 게임의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하는 행위를 업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최소한 개인과 개인 간의 게임아이템과 게임머니 거래는 위법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밝혔다. 또 아직 게임머니 거래합법화에 대처할 능력이나 준비가 안된 게임 업체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이번 판결은 게임사의 아이템 중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았지만, 실제로 주요 게임 업체들이 즉시 진입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이템 거래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 갑자기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입장을 바꾸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수익성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중소 게임업체가 먼저 아이템 중개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판결은 그 동안 가상재화 산업의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던 가상화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은 온라인게임 산업의 선진국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가상재화와 가상경제의 후진국이기도 하다. 2006년경 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은 한국의 게임 아이템 판매나 거래, 싸이월드의 도토리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경이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이런 경이감이 없다. 이미 자사의 비즈니스에 흡수해 운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혹자는 청소년 보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청소년 보호는 중요하지만 아이템거래 행위 자체가 청소년에게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문제의 근본원인은 청소년 보호에 노력하지 않는 다수의 아이템 중개업체와 일부 게임 업체의 무분별한 게임 아이템 판매다.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온 아이템 중개업체에 대한 정비작업과 아이템거래의 산업화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점에서 정부는 아이템 중개업체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대법원이 산업의 미래를 담당하는 정부보다 몇 발짝 더 나아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가상화폐와 가상재화 산업의 세계적인 흐름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온라인게임과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제2, 제3의 인터넷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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