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포럼] 디지털 콘텐츠 산업 인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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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를 주도할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 산업을 선도할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융합형 산업의 표본인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선도할 인재를 전통적인 학부 체제에서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경험한 사례 몇 가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지난해 국내 굴지의 게임사와 게임 관련 커리큘럼을 공동 개발하고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용했는데, 커리큘럼 논의를 시작하면서 걱정했던 것이 있다. 게임사에서 CG·게임엔진·서버 프로그래밍·게임인공지능·게임물리 등 게임에 특화한 일련의 과목 개설을 요구할 것이라는 염려였는데 이는 기우였다. 오히려 2·3학년 전공기초 과목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강한 주문을 해 왔다.

 실제로 게임개발에 필요한 고급 기술은 입사 이후에도 배울 수 있지만, 프로그래밍의 기본·문제풀이(problem solving) 기법의 기본 등은 회사에서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탄탄한 기본지식을 갖춘 신입 개발자는 단기간에 고급 게임개발 기술을 익힌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여간 국내 게임산업을 선도해 온 경험에 기반한 주문이었다. 신선했다.

 나는 봄 학기에 게임 프로그래밍1 과목을 강의한다. 이론을 가르치고 이를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방식의 꽉 짜인 커리큘럼을 진행한다. 한편, 가을학기 게임 프로그래밍2 수업에서는 이론 따로 프로그램 따로 방식을 택한다. 고급 이론을 강의하되 이와는 별도로 원하는 게임을 마음대로 제작해보는 팀 프로젝트를 할당했다. 결과는 감탄 반 실망 반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3차원 모델과 그래픽 데이터를 구하고, 전혀 강의하지 않은 공개소스를 활용해 기대를 뛰어넘는 기술을 구현했다. 게임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알기에 가능했던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래픽 아트 작업과 프로그램이 통합되지 않고, 게임 시나리오 담당 학생의 의도가 프로그래머에게 전달되지 않는 전형적인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즉, 팀원 간 소통 및 협업 능력 부재가 큰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내가 도출한 결론은 기본에 충실하자, 그리고 소통 및 협업 능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의 젊은 게임 개발자들은 대학에서 제대로 된 게임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세대였다. 하지만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알기에 온라인게임이라는 신천지를 열어젖힐 수 있었다. 현재 국내 게임산업에서 양질의 프로그래머 기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본이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 양성이 시급하다.

 융합이라는 화두가 풍미하면서 학제 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에 동의하지만 4년이라는 기간에 시나리오 제작, 그래픽 아트와 고난도 프로그래밍을 모두 잘하는 인재를 양성해 낼 수는 없다. 대신 자신의 전공지식을 제대로 갖춘 상태에서, 타 분야 전공자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그들과 토론하고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된다. 이러한 훈련 과정을 거친 다수의 전문 인력이 차세대 디지털 콘텐츠 사업의 근간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그중에서 특별한 DNA를 가진 몇몇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의 계보를 잇게 되는 것이다.

 다소 문맥은 다르지만, 미국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이 학교는 4년간 토론식 수업을 거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본을 교육한다. 동문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동문 수로 나눈 통계에서 이들은 최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물론 다양한 커리큘럼을 소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소통 협업 능력을 기르면 된다. 디지털콘텐츠산업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콘텐츠산업의 열쇠는 글로벌 시대에 맞는 기초지식과 유연성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양성에 있다.

한정현 고려대학교 컴퓨터·통신공학부 교수/jha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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