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국민과의 소통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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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선원이 심각한 위장병에 걸렸다. 그 배의 의사였던 커티클 박사는 자신의 의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뻐했다. 그는 환자를 진찰하고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커티클 박사는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난 의술로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맹장을 떼어냈다. 그리고 수술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선원들에게 흥미 있는 해부학적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여태껏 인체의 내부구조를 본 적이 없던 선원들은 신기하기만 했다. 의사도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옆에서 보조하는 선원들은 커티클 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봉합을 할 때쯤 환자는 이미 죽은 상태로 수술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커티클 박사는 자기 자랑에 열중한 나머지 환자가 죽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선원들은 의사의 권위에 눌려 환자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모비딕’으로 유명한 대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 ‘화이트 재킷’의 한 장면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경기침체와 불안한 서민경제, 고용불안과 노사갈등 등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수술대에 누워 있는 처지나 다름없다. 때마침 지난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을 표방해온 후보가 당선됐다. CEO 출신인 그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보다는 엉뚱한 일에 열정을 쏟아왔다. 대운하 사업이 그랬고 기업구조조정과 미디어법 강행 처리가 그랬다. 서민대책을 비롯해 노사문제·부동산대책·교육정책·세금정책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힘없는 서민들의 이반된 민심을 외면한 채 아슬아슬한 의술을 펼쳐왔다.

 그런데 최근 MB정부의 국정운영기조와 정책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임기에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 의견을 자세히 소개하고 답변하는 형태로 연설을 진행, 앞으로 인터넷 민심과 적극 소통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은 지난주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하반기 경제운용의 초점을 서민생활에 둬 우선적으로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모처럼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등 친(親)서민 행보 강화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MB정부가 ‘보수’에서 ‘중도 실용’으로 국정운영기조의 대전환을 선언하자 야당은 대통령의 달라진 행보에 ‘위장된 민생공약’이라고 폄하했다. 일부 보수 진영도 기업 친화에서 친서민으로, 부동산 활성화에서 규제로, 감세에서 고소득층 증세로,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에서 사교육 억제를 바탕으로 한 공교육 강화로 MB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는 것에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집권 1년 반 만에 대변신을 선언한 MB정부의 변심은 무죄다. 대한민국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 MB정부가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이 그를 믿고 힘을 보태줘야 할 때다. 커티클 박사가 실력이 모자라 수술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소통 부재’였다. 수술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친(親)서민 행보에 나선 MB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김종윤 국제부 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