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마루와 다락, 광장과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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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가 대세를 이룬 요즘 주거 환경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20년 전만 해도 다락방이 있는 집이 적지 않았다. 저장할 물건이나 잡동사니를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왠지 다락방에 올라가면 혼자만의 자유, 해방감 같은 게 느껴진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을 불러 키득거린 곳도, 비밀일기를 쓰는 곳도, 슬퍼질 때 혼자 훌쩍거리는 곳도 거기였다.

 다락이 은밀한 개인 공간이라면 마루(혹은 거실)는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지나다니고, 밥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열린 장소다. 마루의 주인은 신문 읽는 아버지도, 나물 다듬는 어머니도, 숙제하는 아이들도 아닌 가족 구성원 전체다. 마루와 다락은 공존해야 한다. 비밀일기 하나 쓸 공간이 없는 생활은 얼마나 창백하며, 같이 호흡할 장소 하나 갖지 못하는 인생은 또 얼마나 무상(無常)한가.

 사회에는 광장과 밀실이 있다.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적 공간, 밀실은 개인이 은밀한 자유를 만끽하는 사적 공간이다. 쓰임새가 다르니 룰도 다르다. 누군가 다락에 올라와 비밀일기를 뒤지거나, 아버지가 마루를 독차지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설가 최인훈은 일찍이 그의 기념비적인 소설 ‘광장’에서 두 공간의 조화와 공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 중 하나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고 언급했다. 광장에선 열린 사회적 존재로, 밀실에선 닫힌 사적 존재로 그 자유와 권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의미다.

 최근 1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우리 사회에 광장과 밀실의 공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스럽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언제부터인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열린 공간’의 기능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 광장의 상징인 다음 아고라는 인터넷 규제의 뭇매를 맞으며 활기가 떨어진 느낌이다. 올바른 광장 문화 조성에 애쓰기보다는 광장 기능 자체를 축소시키는 일부 계층의 편협된 시각은 박제화된 가짜 광장만을 양산한다.

 밀실 기능은 더욱 심각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온라인 정보를 제대로 보호하겠다고 큰소리친 정부가 모 교육감 후보의 7년치 e메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압수하고, 수사대상이라는 이유로 개인 e메일을 버젓이 공개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만의 밀실이 원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공개되고 파괴된다면 그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자기 자신의 사적인 장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잘라 말했다.

 두어 달 전부터 구글 G메일을 기본 e메일로 쓰는데 주변 사람들이 참 잘했다 한다. 당시에는 다른 이유로 바꾼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그러니 잘한 일인가 싶다. 새로운 온라인 광장으로 미국 서비스인 트위터가 떠오르는 것도 어떤 점에선 안타깝다. 거창하게 ‘사이버 망명’을 말하지 않아도 권력기관의 행보가 다수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느끼게 한다면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가 광장과 밀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국가 혹은 정부가 마지막까지도 그 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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