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춘향이는 어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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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되어도 내 낭군 못되어도 내 낭군, 고관대작 내 다 싫고 만종록도 내 다 싫소.’ 기생 춘향이 옥중에서 이몽룡과 대화한 내용이다. 그리던 연인을 만났으나 한 사람은 거지행색으로, 또 한 사람은 영어(囹圄)의 몸으로 대면했다. 불세출의 고전인 춘향전은 애절한 사랑의 표현을 대쪽 같은 절개로 대신했다. 요즘 같은 세태에는 바라기 힘든, 말 그대로 ‘고전’이다.

 하지만 진부한 내용의 뻔한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다. 구전과 기록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구수한 가락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현실과 비유할 때 잘 맞는 옷과 같은 ‘궁합의 묘미’ 때문일 것이다. 고전이 고전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게다가 시사하는 교훈은 꽉 찬 만두 속이다.

 대기업은 열녀 춘향을 원한다. 자기만을 바라보고 헌신해 줄 것을 중소기업(하도급업체)에 끊임없이 요구한다. 삼성 협력사는 LG 협력사가 될 수 없고, LG 협력사는 삼성 협력사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금기사항은 업계의 가장 기초적인 불문율이다. 만약 어기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는다. ‘이부종사(二夫從事)’를 원치 않는 대기업의 눈길을 피해 양다리 걸치는 기업도 있 긴 하다. 하지만 걸리면 죽음이다. 어떻게든 보복을 받는다. 대기업의 눈에 수절하지 못한 하도급기업은 싸구려 기생(?)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접이 후한 것도 아니다. 고광대실 어르신의 비위를 맞췄으면 화대라도 두둑이 챙겨줘야 하는 것이 이치다. 평생을 같이할 대부인도 아닌데, 수절을 요구했으면 당연히 대가가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현실은 전혀 아니다. 혹여 이익이라도 조금 내려고 하면 먼저 다가오는 것은 축하의 말이 아니라 단가인하 압력이다. 자기보다 배부른 후실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춘향이는 자연스럽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려면 입단속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앓는 소리를 해야 한다. 언론에 여유 있는 이미지로 비치는 것도 끔찍이 무서워한다.

 협력사 부도 소식에 은행보다 먼저 달려와 설비를 들어내고, 다른 공급처 물색에 여념이 없는 낭군을 내 낭군이라고 여기는 열녀는 없다. “차라리 기생질을 하지, 중소기업 사장 못해먹겠다”는 푸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물론 대기업의 어려운 상황도 있다. 원가가 곧 경쟁력인 살풍경 속에서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하는 고충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기업 월급의 절반 수준, 노동 강도는 배 이상 되는 중소기업의 죄는 또 뭐란 말인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입사한 게 죄라면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중견기업이 다시 대기업이 되는 것이 기업의 생육원리다. 가능성이 있고 전도유망한 기업이 성장해야 기업도 사회도 건강해진다. 당연한 진리가 현실 논리에 묻혀 숨 한 번 제대로 못 쉰다. 중소기업의 생태계가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로 만들었고, 옥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을 짜서 만들었으며…” 과객의 권주가가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절개를 요구했으면 지켜주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남녀 관계나 기업 협력이나 똑같다. 그러나 지금, 열녀는 있으되 열부가 없다. 그렇다면 불쌍한 춘향이는 누가 돌봐주나. 춘향전처럼 우리 사회도 해피엔딩을 원한다면 지금쯤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어사 이몽룡이 등장할 때가 아닌가.

이경우 신성장산업부장@전자신문,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