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적정 외환보유액이 3천억달러대라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작년 9월 외환보유액이 2천400억달러에 육박했지만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발발된 금융위기 때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말 외환보유액이 2천267억7천만 달러로 전월말보다 142억 9천만 달러 증가하면서 외환보유액 확충을 주장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외환보유액 확충은 환율 조작국 오명을 쓸 수 있고 통안증권 발행에 따른 이자부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외환보유액 다다익선”=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2천267억7천만달러로 전월 말보다 142억9천만달러 급증하면서 작년 9월 이후 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상 최대치였던 작년 3월의 2천642억5천만달러에 비해서는 374억8천만달러 줄어든 규모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이 3개월간 252억3천만달러 급증했지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규모라고 지적했다. 3개월 수입분과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등을 고려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 맞춰 3천억달러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본부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여러가지 기준 중 최대치인 3천억달러 정도가 돼야 웬만한 충격이 와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불안.디폴트 위험 대비”=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을 적정 수준으로 확충하지 않으면 대형 위기가 닥쳤을 때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출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대외충격에 쉽게 노출되고 안보불안 요소까지 있어 위험이 닥쳤을 때 해외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불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보다 더 큰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 경제 기초가 지금보다 취약하다면 3천억달러도 넉넉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심리적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 대규모 환차손이 생기면 자금조달이 끊기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단기적인 환율 급등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면 경제 펀더멘털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환율변동위험 헤지나 선수금 등을 통해 이뤄지는 선박 등 대규모 수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단기외채 축소보다는 외환보유액을 늘려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의 이대기 연구위원도 최근 한 보고서에서 “국제 금융시장이 호전되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발행을 확대하거나 환율이 급락할 때 적절한 수준에서 외환을 사들임으로써 보유 외환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정을 예방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율조작국 오명 피해야“ 반론도=그러나 외환보유액을 인위적으로 확충해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 달러화를 사들여 무리하게 외환보유액을 늘리면 환율 조작국 오명을 쓰게 돼 통상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환율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보복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기획재정부 손병두 외화자금과장은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좋기는 하지만 적정 규모는 판단하기 어렵다“며 ”외환시장을 통해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확충을 위한 통안증권의 발행에 따른 이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 확충과 별도로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확대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 과장은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본수지도 흑자를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외환보유액이 늘어나게 된다“며 ”외환보유액 하나만으로 위기 시에 대비하기보다는 통화스와프 같은 조치를 통해 자본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의 진출입을 제한하거나 은행 등의 단기외채 비율을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단기간에 외환보유액을 늘리면 환율개입 논란에 부딪힐 수 있으며 통화량 증가에 따른 유동성 관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기업의 선물환매도나 해외펀드 환헤지 등 경제적 요인은 어쩔 수 없지만 은행들이 전체 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규제는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이 연구위원도 ”기회비용의 부작용이 있고 통안증권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외환보유액 확충 대신 외환 건전성 감독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 진출입을 규제하고 은행 등의 단기외채 비율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경제 많이 본 뉴스
-
1
MBK, '골칫거리' 홈플러스 4조 리스부채…법정관리로 탕감 노렸나
-
2
금감원 강조한 '자본 질' 따져 보니…보험사 7곳 '미흡'
-
3
미국 발 'R의 공포'···미·국내 증시 하락세
-
4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보조배터리 내부 절연파괴 원인
-
5
트럼프 취임 50일…가상자산 시총 1100조원 '증발'
-
6
은행 성과급 잔치 이유있네...작년 은행 순이익 22.4조 '역대 최대'
-
7
보험대리점 설계사 10명중 1명은 '한화생명 GA'…年 매출만 2.6조원
-
8
[ET라씨로] 참엔지니어링 80% 감자 결정에 주가 上
-
9
메리츠화재, 결국 MG손보 인수 포기…청·파산 가능성에 '촉각'
-
10
그리드위즈, ESS 운영 솔루션 교체로 경제 가치 35% 높인다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