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바보’ 노무현을 가슴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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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 이후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퇴임 이후 살던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위에서 2009년 5월 ‘허공’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힘이 들었는가. 그토록 좋아하는 5월 이 봄날에, 시민을 버리고.

 2007년 퇴임을 앞둔 겨울 어느 날 청와대에서 “다음에 기쁜 얼굴로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라”는 말이 그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기쁠 때건, 슬플 때건 다시 만날 수 없다. “야, 기분좋다”며 호기있게 웃던 반달 웃음도 볼 수 없다.

 지사(志士)를 존경한다고 했던가. “지사적 기개가 없는 정치인들이 사는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사가, 정치인이 지사적 자격을 갖고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사적 절개를 지키며, 우직하게 변절과 오욕으로 점철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헤쳐나왔다. 이상주의자였다. “이상이 없는 정치인, 포부가 없는 정치인이 지배하는 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지사의 기개를 갖춘 정치인이 있는 나라를 (저는)아직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사회를 더욱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만들려면 더 자유스럽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시민의 ‘동행’을 요구했다. “경쟁은 낙오자를 만든다. 낙오자 역시 시민이다. 그 시민이 예속, 종속의 지위로 빠지지 않게 만드는 게 민주주의다” “승자라고 하더라도 패자를 지배하지 않고, 예속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되지 않았다. 정치 철학은 정적에 의해 ‘좌파 10년’ ‘잃어버린 10년’이 됐다.

 임기 중이나, 이후에도 ‘말’에 시달렸다. 말은 뉴스가 됐고, 부메랑처럼 날아와 그를 옥죘다. 이렇게 해명했다. “나는 스스로 충직한 신하가 되려 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제왕의 위엄에 맞는 언어가 있는데, 지도자의 위엄을 갖추려 하지 않았다. 신비, 카리스마를 배우지 못했다. 사리로 설득하려 했지, 심리적으로 마음을 사지 못했다”고. “(내가)금기시한 것은 남을 지배한다는 것이고, 지배하는데 필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술집 색시나, 버스 안내양에 앞에서도 저라는 말이 나온다. 장성(將星) 앞에서 ‘나’라고 해야 하는데, 조금 지나면 ‘저’라는 말이 나온다”고 털어놨다. 시민(市民)과 민중(民衆)’에게 그의 말은 ‘사람다운 냄새’였지만, 정적에게는 호전적이거나, 천박한 발언으로 치부됐다. 그는 권위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비(非)도덕적’이라는 칼날은 예리하고 무서웠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노 전 대통령은 아내와 아들 딸, 참여정부 정치적 동반자들의 연이은 소환 조사에는 당당하지 못했다. ‘지사’ 노무현을 꿈꾸던 그는 ‘면목없다’는 말을 건넨 뒤 침잠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자부심도 있고, 떳떳한 대통령이도록 노력했다”는 그는 퇴임 이후 부도덕, 비도덕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정치적 동반자와 정적, 언론, 비판은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사람다운 냄새가 났던 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사는 세상’을 떠났다. ‘저기 사람이 지나 가네’라는 말을 남기고 서거했다. 1946년부터 2009년까지 향년 63년 동안 사람이 사는 세상을 그저 지나갔다. 시민과 민중을 버리고 간 그의 죽음을 결코 미화할 수 없다. ‘바보’ 노무현을 가슴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