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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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P의 1위 수성, 시스코시스템스와 구글의 약진, 인텔의 후퇴’.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나타난 대형 첨단기술 업체의 랭킹 변화를 압축한 표현이다.

 13일 실리콘밸리 전문 머큐리뉴스가 이 지역 상위 150대 기업을 선정, 분석한 연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HP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과 이익 부문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며 실리콘밸리내 최강자로서 입지를 재확인했다.

 반면 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2%의 판매 감소세를 겪은 인텔은 1993년 이후 처음으로 2위자리를 내주고 3위로 물러 앉았다. 대신 지난해 3위였던 시스코시스템스가 인텔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으며 e베이가 새롭게 톱10에 진입했다.

 이번 조사에서 150개 전체 기업의 지난해 영업매출은 전년대비 5.2% 늘어난 4737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01년 닷컴 붕괴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수익 역시 52%가 감소하면서 2001년 이후 사상 최악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또 150개 업체의 시장가치는 지난 3월말 현재 전년 동기대비 32% 떨어진 8499억 달러로 나타났다. 2002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150개 기업 중 SW 부문이 가장 많은 4개가 늘어 26개사에 달했고 네트워킹 부문은 반대로 4개가 줄어든 21개사로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고용 인력은 총 111만8000여명으로 전년 대비 20.1%가 늘었지만 인당 영업액은 42만 3579달러로 12.4%가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자신감을 내비쳤던 해외시장에서도 실리콘밸리 업체들의 실적악화가 두드러졌다.

 해외시장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인텔의 4분기 해외 매출은 3분기보다 무려 20%가 줄었고 미국내 매출 역시 18%의 감소세를 보였다. 척 멀로이 인텔 대변인은 이 같은 상황을 ‘사상 전례가 없는 하락세’로 압축했다. 해외 매출이 3분의 2를 차지하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역시 전년동기 대비 12%가 감소했고 미국 시장에서는 9%가 줄었다.

 물론 모든 기업이 해외시장서 추락한 것은 아니다. 구글은 지난 2001년 전체 매출의 18%이었던 해외실적이 지난해 40%의 성장세에 힘입어 절반을 넘어섰다. 시스코도 전체매출 성장세(5%)의 4배에 달하는 20%가 늘어나며 해외매출이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실리콘밸리 업체들은 자국내 경기부양 사업을 비롯해 중국·인도·멕시코 등에서 추진되는 공공부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날로 경직되는 신용시장, 자본투자의 위축, 보호관세의 강화와 정치적인 불확실성 등의 악재가 지속되고 있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해외시장 공략도 당분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시선이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대다수 첨단기술은 자본투자와 관련돼 있는데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의 자본투자가 두자릿수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세계각국의 경기부양사업 대부분이 하이테크가 아닌 도로·다리 등 전통적인 인프라 사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하이테크 업체들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