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IT가 아니라, IT 정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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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준 청와대 국가미래기획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이명박정부에 IT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과거 정보통신부를 그리워하는 속내를 보면 보조금을 받고 독점사업권을 받았던 이들”이라고 했다. 낯이 익은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자실을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서 담합하는 곳’이라고 묘사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 발언을 해석하면 정보통신부는 독점사업권을 주는 곳, 정보통신인들은 독점사업권을 받아 호가호위하는 인물이 된다.

 이쯤되면 ‘막 가자’는 얘기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언 자체를 무시했겠지만, 곽 위원장의 위상을 고려하면 그럴 수 없다. 덕분에 앞으로 4년간 정보통신업계는 정보통신인을 평가 절하하는 인물들과 ‘맞짱’이라도 떠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우호적이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공공연히 전면에 나서 IT업계를 비난하는 참모들을 보면 두렵기만 하다.

 곽승준 위원장은 누구인가. 이명박정부를 만든 ‘개국공신’이자, 청와대 초대 국정기획수석을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이명박정부의 국가 미래전략을 짜는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녹색성장과 신성장이 있고, 손에 우리나라 산업 발전 로드맵이 있다. 그는 IT업계와 과학기술계 비판을 기득권을 주장하는 일부의 넋두리 정도로 이해했다. 세계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한 지난 과거를 특정 기득권의 독점사업시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곱씹어볼 만하다. 바로 이명박정부 내부에서 속속 감지되는 ‘반IT 정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수차례 IT를 놓고 폄하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만났을 때를 포함해 두 차례에 걸쳐 정보화는 고용을 줄이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는 발언을 했다. 녹색성장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온 발언이라는 청와대 해명도 있었지만 이를 믿기엔 현 정부의 전과가 너무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개발과 서비스 개발을 주도한 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중장기 과학기술비전을 이끌던 과학기술부마저 해체시켰다. 정통부를 이어받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년간 정보통신산업 진흥보다 미디어법 논란 등 정치적 싸움에 골몰했다. 지식경제부는 IT라는 말 대신 ‘뉴IT’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정보통신인들의 기피대상 1호 조직이 됐다. 그 사이 미국, 일본은 불황극복을 위해 수십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IT에 쏟아붓고, IT 뉴딜로 새로운 통신인프라 확보와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부럽지만 남의 나라 일이다.

 IT 정책이 없어도 업계는 일을 냈다. 지난달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 90%에 이르는 41억300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 IMF에 이어 세계 금융위기 극복의 선봉역할을 IT 산업이 재연했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트로이카가 그토록 갈망했던 환율 안정은 IT 수출 한방으로 끝났다. 정부가 바뀌어도 IT 수출이 핵심산업이라는 것을 실적으로 보여줬다. 곽승준 수석이 ‘기득권’ 세력 운운하던 그 순간에 41억3000만달러라는 알토란 같은 무역수지 흑자를 이명박정부 금고에 귀한 ‘달러’로 안겨줬다. 국가 위기상황이라는 해외 언론의 비아냥과 3월 위기설을 수출로 날려버렸다.

 IT가 죽었다는 말은 이제 수정돼야 한다. 수출로 대한민국을 구하는 IT인들이 있기에, IT는 죽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에 와서 죽은 것은 IT가 아니라 IT 정책이었을 뿐이다. 이것만은 분명히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