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비자 "외산 가전이라도 값 싸다면"

 외산제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일본 가전시장이 열리고 있다.

 브랜드와 세부 기능을 꼼꼼히 따지며 자국 제품을 선호해온 일본 소비자들이 저가 수입 전자제품 구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4일 AP는 경기 침체기를 맞아 일본 가전시장에 불어닥친 소비행태의 변화를 자세히 전했다.

 ◇달라지는 소비자=일본에서는 토스터에서 노트북PC에 이르는 가전 제품 상당수가 기능 면에서 점차 비슷해진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구매결정의 핵심 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일본시장에 덜 알려진 해외 업체들이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내 유력업체들과 판매경쟁에 불을 지피며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오카산증권의 신야 토리하마 애널리스트는 “일본 소비자들은 여전히 품질에 민감하지만, 이제는 가격에 좀더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며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업체 제품들이 유명 업체와 큰 차이가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시야 노무라 덴츄커뮤니케이션인스티튜트 조사역은 “소비자들이 이제 비용대비 최대 효과를 지향하고 있다”며 “지난 80년대 거품 경제기에 고가제품을 좇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기본적으로 가격을 비교하고, 인터넷을 통해 제품 리뷰를 찾아보는 등 소비행태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외산가전의 선전=검소한(?) 소비자들의 등장으로 해외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월마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2년 일본시장 진출 이후 고전해온 월마트의 가전매장이 최근 들어 저가 외산제품의 판매가 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도쿄의 월마트인 세이유는 13만7000엔(약 200만원)에 판매되는 파나소닉의 고급형 세탁기 바로 옆에 중국 하이얼의 저가(1만9700엔·약 30만원) 제품을 비치하고 있다.

 판매원인 마사타카 코모리다는 “많은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하이얼은 주로 젊은층과 노년층에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또 “파나소닉 세탁기가 한 달에 한두 대가 팔리는 것과 달리 하이얼 제품은 많은 경우 하루에 5∼10대를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가 외산 가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내 판매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수입제품도 늘었다. 하이얼 냉장고는 지난해 9월 사상 처음으로 닛케이마켓액세스(NMA) 선정 톱10 판매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또 소매 데이터를 집계하는 BCN에 따르면 2년 전 일본내 톱10(판매기준) 노트북PC 가운데 2개에 그쳤던 해외제품이 최근에는 대만 에이서·아수스텍, 중국 레노버, 미국 델·애플·게이트웨이(에이서 소유) 등 6개로 늘어났다. GfK마케팅서비스재팬 조사에서는 일본에서 판매된 소형 노트북PC의 약 77%가 대만산이다.

 ◇일본 업체들의 대응=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일본 시장이 단순기능 중심의 저가품과 고급형 제품으로 소비가 양극화되는 현상이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산제품의 공세를 겨냥해 일본 업체들은 토스터, 단순기능 세탁기 등 로엔드 시장에서는 가격인하로 맞서는 한편, 하이엔드 시장에서는 박테리아 잡는 냉장고, 에너지 절약형 세탁기, 보습 에어컨 등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제품으로 양동작전에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는 외산제품의 시장공세가 틈새(니치) 시장에 국한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소비자들이 여전히 신제품의 경우 자국산이 외산보다 우수하다고 믿고 있는데다 일본 업체들이 데스크톱과 대형 노트북PC 등 주류시장과 50인치 TV와 같은 고가품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NMA의 아수스히 마수바라 수석 에디터는 “외산제품 판매 증가가 대세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대량 판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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