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업 CEO는 전리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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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소문대로 됐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15일 이사회에서 자진 사퇴를 공식 표명했다. 지난 5년간 그의 경영실적은 A학점 정도로 우수했다. 그 덕분에 지난 2007년엔 연임에 성공했다. 1년이나 임기가 남은 그의 퇴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 회장의 교체설은 지난 12월 초에 정점에 올랐다. 검찰이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포스코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 집을 압수수색했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단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검찰이 한 달째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진상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회장의 경질설은 검찰 수사 이전에도 있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나돌았다. 지난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 회장이 순전히 정치 외풍에 밀려 사퇴했다고 여긴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정치권이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는, 100% 민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개입한다면 자유시장경제라는 헌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 CEO를 바꿀 권한은 순전히 주주만 갖고 있다. 포스코는 초대 박태준 회장부터 이구택 회장까지 정권 교체 때마다 CEO를 바꾸는 오명을 결국 씻지 못했다.

 포스코처럼 민영화한 대표적인 기업이 KT다. KT는 앞서 민영화한 포스코를 늘 벤치마킹했다. KT의 CEO들은 특히 포스코의 경영구조를 많이 연구했다. 어떤 경영 외적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경영구조를 만들려 애를 썼다. 남중수 전 사장이 이를 완성했다. 특정 지배주주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다. 이랬던 남 전 사장도 검찰수사라는 뜻밖의 변수에 결국 자리를 물러났다. 명백한 불법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의 사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퇴진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실 KT의 전 CEO들은 경영구조에 손을 댈 때마다 숱한 오해를 받았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이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민간기업의 CEO가 주주로서의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경영 활동에 간섭을 받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차라리 이럴 바엔 정부가 지분 1%라도 다시 사서 공기업처럼 부려라” 정치 바람에 휘말릴 때마다 KT 임직원들이 자조적으로 내뱉었던 말이다. 뒤숭숭한 포스코 임직원들의 요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치명상을 준다. 외국 투자자의 눈에 죄다 공기업뿐인 중국과 무늬만 자유시장경제인 한국이 뭐가 다를 수 있을까.

 미국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워싱턴에 2만개의 자리가 바뀐다고 한다. 주로 정무직 관료 자리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바꾸는 자리에 민간기업 CEO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제3자 개입 금지법’이라고 지금은 사라진 법이 있다. 군사정권 시절의 이 악법을 다시 꺼내고 싶다. 새 법의 이름은 ‘제3자 기업CEO인사개입 금지법’이다.

 신화수 취재담당부국장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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