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생존 게임이 시작됐다.
1년 넘게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체력이 바닥난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퇴출 기로에 섰다. 대다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적자에 허덕일 정도로 반도체 경기 불황 터널은 길었고 그 끝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재고 과잉 현상은 단기간 내 수그러들지 않을 조짐이다.
이에 따라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장기 불황과 경영 위기로 세계 D램 업계에는 구조개편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전망이다. 지난해 세계 D램 시장 5위권 업체 중 세 곳이 자금 수혈에 나서야 할 정도로 재정난은 심각하다. 또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대만발 구조조정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세계 D램 반도체 기업들 합종연횡 활발=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D램 값은 지난 한 해 56% 가까이 하락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이익 구조였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2007년 390억달러로 400억달러에 육박했으나 반도체 시황 악화 탓에 지난해 말 328억달러로 16%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는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미국 마이크론-대만 난야 등 미국 진영과 일본 엘피다-대만 파워칩 등 일본 진영은 대만 정부의 구제 자금을 바탕으로 대만 프로모스와 합병, 세계 D램 시장 통일에 나선다. 마이크론은 D램 및 낸드 기술 이전을, 엘피다는 연구개발(R&D)센터 이전 등을 대만 측에 제시, 대만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진영을 중심으로 대만 D램 기업이 뭉치면 지난해 3분기 현재 D램 점유율 18.3%로 삼성전자(30.2%)의 뒤를 이어 3위 그룹을 형성한다. 하이닉스(19.3%) 뒤를 바짝 추격한다. 반면에 일본 엘피다 진영 중심으로 대만 D램 기업이 통합하면 22.9%로 2위 그룹을 형성한다. 하이닉스는 3위권으로 밀려난다.
하이닉스도 이에 질세라 대만 프로모스와 다양한 협력 방안을 찾고 있다. 하이닉스는 프로모스 측에 50나노 D램 기술을 지난해 상반기 이전하기로 협약한 데 이어 ‘낸드 기술 이전’이라는 새로운 당근을 내놓았다.
◇D램 시장 판도 변화 변수는=키몬다는 독일 정부 등에서 긴급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 제휴 기업이던 난야가 지난해 4월 마이크론과 손을 잡으면서 헤어진데다 같은 달 엘피다와의 기술 제휴도 그 효력이 불투명하다. 엘피다가 대만과의 통합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서다. 게다가 모기업인 인피니언은 더 이상 추가 자금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마이크론은 새해 1분기(9∼11월) 순손실이 7억600만달러로 8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했다. 마이크론 쪽에서는 외부 자금 조달이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마이크론은 대만 기업과 협력, 대만 정부 자금 조달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모스가 일본 기업향인데다 현재 하이닉스와 D램 기술 이전 협력을 체결한 상태여서 미·대만 간 통합은 불투명하다.
일본 엘피다도 대만 D램 업계의 연대를 적극 추진 중이다. 엘피다는 대만 3개 업체와 합병 논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D램 전문 기업이라는 점이 엘피다의 대만 기업 합병 성공 여부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마이크론이 대만 정부에 D램은 물론이고 낸드 메모리 기술 이전도 제안했다. 하이닉스 역시 낸드 기술 이전을 제안했다.
난야·파워칩·프로모스 등 대만 3사 처지에서는 기술 이전만이 살길이다. 그동안 해외에서 원천 기술을 들여와 반도체를 만드는 파운드리 사업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대만 정부가 기업 합병과 기술 이전을 전제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해 난야와 파워칩은 마이크론과 엘피다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반면에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독자 생존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대만은 물론이고 선진기업에 비해 기술력과 미세공정 측면에서 경쟁력이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D램 판가 하락폭이 큰 탓에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어렵지만 D램 50나노 공정에서 국내 기업은 양산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도 재편 조짐=새해 상반기 LCD 패널 가격과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대만발 구조조정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지난해 6월 이후 대만 AUO·CMO·CPT 등 주요 패널 업체는 일찌감치 감산에 들어간 뒤 지금은 몇 개월째 생산 원가도 못 맞추는 수준으로 가동률이 추락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AUO와 CMO는 자국 내 패널 업체와 합병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히 대만 정부도 자국 내 LCD 패널 산업의 구조 개편을 직간접으로 유도하는 모습이다. 현지 LCD 패널 업체가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정부 차원에서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류 자오쉬안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CMO 본사를 방문, “LCD 업계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며 자국 내 LCD 업계에 대한 지원을 시사한 바 있다.
새해에는 그동안 한국·대만의 LCD 패널 양산 경쟁에 가세하려 했던 일본의 추격전도 주춤할 전망이다. LCD 종주국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일본 샤프·소니가 지난해 최악의 실적으로 추락하면서 10세대 LCD 라인 공동 투자에 제동이 걸린 것이 단적인 예다. 샤프가 10세대 라인 가동에 차질을 빚는다면 당초 양산능력 톱5의 계획도 상당 기간 미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메이저 업체의 M&A와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더라도 새해 전 세계 LCD 패널 시장에서 적지 않은 지각 변동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LG 등 국내 LCD 패널 업체는 세계 시장 선두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대만·일본 업계와의 격차를 한참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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