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인도처럼 소프트웨어(SW)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가닥을 어떻게 잡느냐. 3000명을 뽑아 외국으로 보내는 것입니다.(중략) 일본은 경제 규모가 2위인데 그쪽 청년은 SW엔지니어가 되는 것을 기피해요. 창조성을 가진 디지털 인재가 우리 사회에는 많잖아요. 이들을 파견하면 국내 SW시장도 더불어 커질 것입니다.”
지난달 열린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의 강연 중의 한 대목이다. SW산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국내 산업을 들여다볼 때마다 IT강국에 가려진 SW산업의 검은 그늘을 보는 서글픈 감정과 탈출구를 찾기가 힘들다는 절망감을 갖던 차에 조 회장의 꾀 많은 일갈이 들렸다.
우리나라의 SW정책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2000년대에 벤처붐이 일어났을 때 무모하게 해외진출을 도모하는 중소 신흥벤처기업을 막지 못하고 해외로 보낸 것은 엄연한 실책이었다.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SW해외지원센터, 즉 아이파크(iPark)에 인큐베이터식의 사무실 임대를 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해외시장에서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는 ‘iPark’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 전략적 고려가 없이 정책이 실시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2000년도에 진출한 기업 중에서 아직까지도 해외에서 건재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몇 개나 될까. 거의 없다. 캐빈 리 실리콘밸리 iPark 소장의 발표문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누적 BEP에 다다르는 데에 4∼5년이 걸리며 또 진출 포기를 하는 기업의 평균 누적 손실은 200만달러 정도라고 한다. 즉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50억원 이상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시점에서도 과연 몇 개의 SW개발사가 이런 자금력을 가지고 있을까.
2000년대에 나는 이러한 정책을 실시한 SW진흥원의 해외협력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 당시 나를 비롯해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은 SW산업의 해외 진출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기존 IT제품 수출보다 조금 더 손이 많이 가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SW제품이 국적을 바꾸게 되면 그저 제품의 언어 변환 등 현지화를 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면 되고 그 나라 시장을 잘 아는 우수한 마케터를 채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복바지 팔듯이 훌륭한 마케터가 뛰어다니면서 팔면 안 될 것이 없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부터 다시 SW산업을 연구하면서 몇몇 기업이 일본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니치마켓을 파고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일본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며 성공한 법인장 5명과의 인터뷰는 고생담과 성공담이 얽혀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이들 법인장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번 직책을 맡기 전에 일본 SW기업에 종사한 적이 있어서 이미 시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심리적 괴리감(psychic difference) 등 해외 진출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일본에서 일을 하게 됐는지를 분석했더니 여기에는 공통점이 없다.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 10년 전에 막연한 기대를 갖고 일본 시스템통합(SI) 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한 사람, 종합상사 출신 등 다양한 접근로를 거쳐 일본에 정착하고 일본 SW업계와 연을 맺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오늘까지 온 것이다.
이들의 ‘서바이벌’에 관해 인터뷰하다가 문득 13세기의 베니스의 마르코 폴로의 일생이 떠올랐다. 마르코 폴로는 17세에 아버지를 따라서 여행길에 올랐다가 여행 3년 만인 1275년에 드디어 원나라 수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는 쿠빌라이 칸 황제 알현 시에 자기가 거쳐 온 실크로드 상에 있는 국가의 이야기를 해 주었고 황제는 총명한 21살의 마르코 폴로에게 반했다.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가 베이징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가지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하니 그의 총명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중국의 양저우에서 3년간 총독 역할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인물이다.
일본경제의 활황으로 우리의 많은 젊은이가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 중에서 몇 명의 마르코 폴로가 탄생할 것인가. 만약 조 회장이 이야기한 3000명 중에서 똑똑한 10%만이라도 일본시장에서 살아남고 그중에서 다시 10%만이라도 우리 SW산업의 국제화를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SW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SW산업에 30명의 마르코 폴로가 공급될 수 있다면 국내 산업적 취약성을 일시에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면서 해외시장을 지렛대로 삼는 SW인력 양성 정책의 강화를 촉구하는 바다.
◆남영호 국민대학교 경상대학 교수 yhnam@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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