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https://img.etnews.com/photonews/0711/071107023041_992833738_b.jpg)
오래 전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는 구호를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이 지향하는 바는 정해진 질서와 규율에 의한 그대로의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는 데 있다. 혹자는 기억하기도 싫은 군사정권 시대의 잔재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이 낡아 빠진 것처럼 보이는 구호를 새롭게 보는 것이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하는 산업사회의 급류에 휩쓸려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정작 우리가 꿈꾸는 선진사회가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선진사회 반열에 들었다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만 내면은 그렇지 못하다. 선진사회일수록 그 사회가 정한 원칙과 정의가 사회 전반에 폭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부족한 사람도 노력과 의지에 따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을 다녀 보면서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도시든 농촌 시골이든 사물이 ‘있을 곳’에 있고 ‘제대로’ 정돈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건물주변만 그런 게 아니다. 공장을 가 봐도 기계의 청결상태, 공구의 정위치, 폐기물 처리 등이 섬뜩할 정도로 제대로 돼 있다. 물론 기계·설비·장치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은 일상화돼 있다.
처음 공장에서 막 뽑아온 새차는 모두 번쩍번쩍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차의 상태는 점점 달라지게 마련이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친 자동차는 첫눈에 ‘때깔’부터 다르다. 수명도 훨씬 더 길다. 사람도 똑같다.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사람과 그냥 내버려두고 방치하는 사람의 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몸도 정신상태도 첫눈에 차이가 드러난다. 술·담배에 찌들고 몸을 함부로 굴려서 부속품이 한두 개 망가져버린 자동차처럼 눈이 늘 게슴츠레하고 피부도 꺼칠하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인생에서 닦는다는 것은 마음껏, 실컷,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조인다는 것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어떤 상황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기름 친다는 것은 뒤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충전한다는 것이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고 늘 마음을 가다듬고 정서적으로 메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그리 바쁜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닦·조·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 ‘닦·조·기’의 기본은 멀리 있거나 어려운 데 있지 않다. 어렵지도 않을 뿐더러 힘들지도 않다.
가령 아이들이 신호등 앞 횡단보도에서 푸른 신호등일 때 손을 들고 걷는 것, 식사할 때 윗사람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난 후에 식사를 하는 것, 공부하는 수업시간에는 공부만 집중할 것 등등인데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모든 걸 믿을 수는 없지만 대다수 수석합격의 명예를 안은 학생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항상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교과서와 수업시간을 잘 지켰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품질관리가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둬 제조강국으로서 기틀이 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품질관리의 기본이 되는 기록 문화가 널리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실 기록을 하더라도 건성건성하기도 한다. 요즘은 컴퓨터가 생겨 저장문화가 성행해 더 기록을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기록하기를 즐겨하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이제 점차 잊혀져가는 황우석 교수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문제의 해결점은 연구실의 연구노트라고 생각했다. 당시 조사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에 의하면 연구실의 실험 기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보관돼 있었다 한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다. 또 산업정보시스템공학에 가끔 등장하는 ‘RAMS’라는 이론을 들고 싶다. 시스템이나 장비를 개발할 때 최초 개념을 설계하는 것부터 폐기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수행되며 기본이 되는 업무의 일종이다. 핵심적 내용을 소개하자면 ‘나’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신뢰성(reliability),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가용성(availability), 항상 반성하고 고치는 정비성(maintainability), 윤택한 삶과 견고한 생활을 추구하는 안전성(safety)이다. 바로 ‘인생의 닦·조·기’인 셈이다.
서로서로에게 물려 있는 연결바퀴의 때를 닦아내고 느슨한 네트워크의 고리를 조이며 뻑뻑한 만남에 기름을 발라 부드럽게 대할 수 있도록 서로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달려들 때다. 개개인이 처한 위치에서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중소기업지원본부장 이덕근 dklee@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