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태 케이블·위성방송사업자협회(CASBAA) 2007’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난 31일 꽤나 충격을 받았다. 콘퍼런스 셋째날이었던 이날 미국의 케이블업체인 HBO의 발표 때문이다. HBO는 이날 ‘SD의 종말(Standard Definition is over)’이라는 발표에서 “향후 1년 내에 HBO의 모든 콘텐츠를 HD로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이 얘기가 나오자 한동안 장내는 숨죽은 듯 조용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반적인 HD 시대 개막이야 예상돼 왔지만 유력 케이블 업체가 실제로 SD의 종말을 고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피부에 직접 와닿았기 때문이다.
HBO뿐만이 아니다. CNN 뉴스나 다른 케이블도 유사한 상황이라고 한다. 모두 HD급 콘텐츠 제공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SD급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아날로그보다 훨씬 선명한 화질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설 땅이 없게 됐다. 가전 제품 매장을 둘러봐도 풀HD·HD급 TV가 전면에 진열돼 있다. SD급 얘기가 언제적 소리인가 싶다.
우리나라는 좀 더 들어가보면 이런 추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외국의 많은 기업이 HD급 방송을 지상파·케이블·IPTV로 제공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방송서비스 환경은 아직도 아날로그가 주류다. 지상파 대부분이 아날로그이며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올해 케이블의 SD용 디지털 셋톱박스 공급 목표는 약 70만대다. 이에 비해 HD급 셋톱박스 공급은 1만가구에 그친다. IPTV는 HD급 콘텐츠로 차별화를 꾀하려고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디딘 상태다. 이렇게 가다가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와 인프라에 가장 낡은 아날로그 콘텐츠를 전송하는 불균형이 생길 것이다.
SD급은 조만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게 뻔하다. 언젠가는 HD급도 풀HD에 밀려날 것이고 풀HD 역시 어떤 신생 기술에 뒤집힐지 모른다. 기술의 숙명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내야 할 것은 단지 SD급 화질이 아니다. 과거에 안주하려는 생각 그 자체다. 그게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나와도 그 한계는 뻔하다. 기술은 기술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틀이 바뀌면 기술은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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