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과 전기가 어쨌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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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대통령은 국가지도통신망을 ‘끌고’ 평양에 갔다. 국가지도통신망이란 국가원수가 유사시 행정부와 군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할수 있도록 모든 국가 조직을 엮어 놓은 네트워크이다. 대통령이 해외순방할 때 이 통신망을 끌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장소가 평양이니만큼, 통신의 특성을 잘아는 이였다면 이번 일은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었음직 하다. 제한된 시간이나마 대한민국의 총 지휘부가 ‘주적(主敵)의 수도’인 평양 한복판에 설치된 셈이기 때믄이었다. 당시 본지는 이 사실을 특종 보도하면서 ‘남북간 통신혈맥을 뚫는다’라는 제목을 붙인바 있다.

 국가간에 통신문제는 통신주권이니, 통신월경이니 하여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들을 담고 있다. 통신시장 개방이나 FTA협상 등에서 사업자의 국적과 지분률을 철저히 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혁과 개방에 부담을 느껴온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한 방문객들은 지금도 평양 순안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면 휴대폰을 출국 때까지 출입국관리소에 맡겨놓아야 한다.

 북한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게 개성공단의 통신환경이다. 남한과 개성공단 간은 현재 350여회선의 통신망이 연결돼 있지만 유선전화만 가능하다. 그것도 001을 먼저 눌러야 하는 국제전화 방식이다. 공단 입주기업들로서는 비싼 요금은 두번째 치더라도 인터넷이나 이동통신이 안돼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남한은 그동안 줄기차게 서울-개성간 직통전화나 인터넷접속을 요구했지만 북한에서는 아직 어림없는 일이다. 이번 회담 때 3통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지만 다른 2통인 통관과 통행에 국한된게 사실이다. 설사 진전이 있었더라도 남북간 통신망 설치문제는 이제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할 사안이다.

 남북경협에서 풀리지 않는 또 하나의 매듭이 에너지 문제다. 지난 2005년 당시 북한에 제안한 200만㎾ 송전이 기술과 비용 측면에서 난제가 수두룩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여유 전력을 에너지난이 극심한 북한에 제공한다는데 무슨 문제냐 하겠지만, 이건 전기의 기본 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남북은 우선 전압부터 다르다.송전 전압은 345㎸와 110∼220㎸로 다르고, 배전 전압도 154㎸와 66㎸로 큰 차이가 난다. 게다가 북한의 전력망은 시설이 낙후되고 전압이나 주파수 변동기준은 국제표준과 다르다. 한마디로 전력품질이 매우 낮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전력망을 연결하면 그야말로 물타기가 돼 남한 전력까지 질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난제는 결국 돈으로 풀어야 하지만, 그 비용이 물경 19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야당의원 주장처럼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기술과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송전제안 자체를 받아들일 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사실이다. 바로 에너지안보 때문이다. 가령 송전 중에 남북간에 정치적 변수 같은게 생기면 단전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이 올수 있다. 북한으로선 1950년 남한에 안겨주었던 이른바 5·14단전의 고통을 역으로 겪게될 수도 있다. 국가간 직접 송전은 그래서 선진국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문제이다.

 누가 뭐래도 남북경협 확대 논의에서 통신과 전력의 안정적 공급은 가장 핵심이다. 이는 기업 활동에서 통신과 에너지가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는 얘기와도 같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논의는 이 두 핵심을 모두 비껴가는 듯한 인상이다. 아무리 경제특구를 늘리고 용지를 싸게 공급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본 인프라가 안되면 손사래부터 치는게 기업의 생리다. 경협 확대 논의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이다.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 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