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이춘성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국제 협력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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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개봉돼 인기를 얻었던 영화 ‘동감’은 79년에 살고 있는 여자주인공(김하늘)이 2000년에 살고 있던 남자주인공(유지태)와 무선통신을 통해 교신을 하고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무선통신에 푹 빠져 모오스(CW)기호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찰 가족이 있다.

 이춘성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국내 협력관 가족이 그 주인공. HL1GCR(아빠)·HL1JQN(엄마)·DS4PAK(큰 아들)·DS1NXT(둘째 아들). 이들은 이름보다 마치 암호 같은 무선국호출부호로 서로 식별하는 IT가족이다.

 가족은 모두 아마추어무선통신사(HAM·햄)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은 무선통신에 흥미를 느낀 사람이 정부로부터 정당한 허가를 받아 무선설비를 갖추고 전 세계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개인적인 실험을 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취미다.

 “아내도 무선통신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영화 동감에서처럼 서로 떨어진 두 사람이 통신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결혼에 골인했죠. 이런 부모 탓인지 아이들도 어렸을 때 무선통신 기기를 장난감 삼아 놀더니 자격증까지 따게 됐습니다.”

 이 협력관은 수박과 복분자로 많이 알려진 전북 고장 고창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법학을 공부했다. 시골인데다 법을 전공해 IT와 친숙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우연히 지난 1988년부터 아마추어무선통신을 시작한 후 IT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이 협력관은 91년 경찰관 공채 시험에 합격해 경찰종합학교에 있는 동안 학교의 허락을 받아 학교 내에서 무선통신을 하면서 한국 경찰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에는 다른 경찰들처럼 군산경찰서에서 근무를 시작해 범죄예방기획, 치안정보수집 등의 일 하면서도 아마추어무선통신사들과 함께 무선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무선BBS를 운영했다.

 “1994년에는 무선 통신 프로그램을 응용해 경찰청에 공무원 제안 제도를 제의했습니다. 유무선사무자동화와 관련된 내용었는데 무선데이터 통신의 보안성 문제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경찰이었지만 IT기술의 발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이 협력관은 2000년 야후와 아마존 등이 분산서비스거부공격(DDoS)와 해킹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 때문에 사이버수사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 당시 경찰청에서는 사이버수사대를 확대를 위해 전국에서 컴퓨터를 잘하는 경찰관들을 모집했습니다. 사이버수사대는 무선인터넷시대를 대비해 무선관련 경력자를 선발키로 했고 전국에서 20명을 뽑았습니다.”

 IT를 활용하는 준비된 경찰이었던 그에게 딱 맞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 그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급변하는 IT환경과 U코리아 시대를 대비해 IT관련 기관과 학계, 업계 등과 함께 한국 경찰의 사이버 수사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무선통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아내인 김남주씨는 일산 집에서 울산에 거주하는 막내 동생과 무선통신을 하며 안부를 지내며 무선통신이 없으면 너무 지루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 세계로 무선통신을 날려 연결된 사람과 각 나라의 문화와 풍습, 기후 관광지 등을 이야기하는 게 취미죠.” 김남주씨에게 무선통신은 인터넷 채팅과 같다.

 “무선통신을 하는 부모를 둔 덕에 아이들도 여기에 빠져 삽니다.”

 이 협력관의 큰아들인 이창훈군은 만 6세에 아마추어무선기사(3급 전화) 자격증을 취득하며 당시 최연소 아마추어무선사가 됐다. 창훈군은 4개월 뒤 모스 부호로 통신하는 무선통신기사(전신급) 자격증을 따서 다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창훈군의 정보기술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 중학교 2년임에도 인터넷정보관리사와 워드자격증 등을 지속적으로 취득하고 있다.

 동생인 이치훈군도 마찬가지. 형의 영향인지 동생도 만 6세 때 아마추어무선통신기사(3급전화, 전신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형과 같은 기록을 세웠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게임 만들기를 좋아해요. 나중에 크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둘째 아들 치훈군의 장래 소망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무선통신 가족에겐 IT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설계하고 싶다는 이춘성 협력관 가족. “무선통신은 한국을 넘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입니다. 여기서 활동하며 민간 외교관이란 사실을 언제나 기억합니다.”

 사이버테러 위협에 대처하는 사이버경찰, 이 협력관 가족은 오늘도 모스 부호를 타전하며 한국의 소식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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