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상용화의 상생협력 현장을 가다](2)중공업 부품 국산화

 기계·조선 산업은 중공업이라는 무게만큼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분야다. 두산엔진-원일, STX엔파코-현진소재, 두산인프라코아-대영코어텍의 상생협력 사례는 조선과 기계라는 양대 중공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거두는 안정적인 수급 및 매출 확대의 성과 뿐 아니라 기간산업 활성화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거두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두산엔진과 원일이 개발한 ‘선박용 전자제어 엔진(RT-flex)의 커먼 레일 유닛용 퓨얼 레일 파이프 가공 기술’과 STX엔파코와 현진이 국산화에 성공한 ‘크랭크샤프트’는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제품의 국내 공급 활성화를 가져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경쟁력을 한 단계 높였다는 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력 사례로 꼽힌다. 또 두산인프라코아와 대영코어텍의 ‘ATC(Auto Tool Changer) 유닛 앗세이(UNIT ASSY)’는 원가절감은 물론, 개발기간 단축과 수입대체효과로 기계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기계·조선산업분야 대기업들은 공급 안정에 따른 생산 안정을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사업의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다. 박달우 두산엔진 협력업체지원팀 부장은 “중소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찾던 중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기술력 있는 중소 개발업체를 발굴 육성하고 나아가 우수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양희석 두산인프라코아 구매기획팀 차장은 “‘제품 경쟁력은 곧 부품 경쟁력’이라는 생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 제고와 핵심부품 확보를 목표로 참여하게 됐다”며 “전략적 부품의 경우 수급안정화, 원가절감 및 환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국산화 개발이 절실했는데 이러한 과제를 정책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박호준 STX엔파코 조달기획팀 과장은 “핵심 수입기자재의 수급 불안정 현상을 해소할 수 있었고 공급안정에 따른 생산안정으로 이어졌다”며 “매년 2∼4개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사업에 계속해서 참여할 계획”이라 말했다.

 ◇원일=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활기가 넘친다. 이미 판로까지 확보됐다면 중소기업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경남 함안군 가야면의 한적한 농공단지에 자리잡은 원일은 조용한 주변 환경과 달리 내부에서는 숨가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으로 회사의 주력 상품이 달라졌고 매출은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일이 개발한 것은 ‘선박용 전자제어 엔진(RT-flex)의 커먼 레일 유닛용 퓨얼 레일 파이프 가공기술’이다. 한마디로 최신 선박용 전자엔진에 사용하는 연료공급 파이프를 새로운 방법으로 제작하는 기술. 연료 파이프로 사용할 고강도 철근 내부에 땅콩 모양의 구멍을 뚫는, 어찌보면 간단해 보이는 이 기술은 원일이 개발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일본과 이탈리아 단 두 개 기업만이 갖고 있었다. 당연히 국내 엔진 제조사는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가격은 둘째 치고 번번히 불안정한 물량 수급에 애를 먹기 일쑤였다. 원일이 이를 해결한 것.

 원일의 기술은 12m의 파이프를 한 번에 뚫을 수 있고(일본 8m까지 가능) 내부 표면도 깔끔하게 나온다. 따라서 외국 기업이 갖고 있던 동종 기술보다 섬세하고 가격 경쟁력도 높다. 국내 엔진 제조사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실린더 커버가 주력 품목이던 지난 2004년 원일의 매출은 68억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커먼 레일 유닛이 주력이 됐고 매출은 26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구매조건부에 따른 협력 대기업 두산엔진의 구매 물량과 함께 타 엔진제조사의 주문도 크게 늘었다. 올해 원일의 매출 목표는 350억원이다.

 ◇현진소재=현진소재도 다를 바 없다. 이 회사의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은 단순 매출 증대보다는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종업원 수 231명에 지난해 매출만 1416억원의 코스닥 상장기업인 현진소재는 ‘중소’를 넘어 ‘중견’기업으로 가기 위한 동력이 필요했다. 부산 녹산 산업단지에 자리잡은 현지 본사 및 공장 곳곳에는 ‘WIN 2012 혁신합시다’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2012년까지 매출 1조원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것이 현재 현진소재의 목표다.

 현진이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으로 개발한 ‘크랭크샤프트’는 선박엔진을 가동하는 핵심 부품이다. 소재 자체의 우수한 특성과 제조 공정에서 요구되는 높은 정밀도 등으로 인해 높은 진입 장벽이 형성돼 있는 고부가가치 단조품이다. 그간 국내 수요의 상당량이 해외 수입에 의존해왔고 이에 따른 외화 유출은 둘째 치고 적시에 공급받지 못해 생기는 생산 차질로 대기업이 입는 손해도 컸다. 현진은 상생 파트너 STX엔파코와 이 크랭크샤프트 국산화에 나섰고 지난 5월 제조 기술의 핵심인 일체형 연속단조 기술 확보와 가공기술의 체계화에 성공했다.

 현진은 제품 개발 후 현재까지 크랭크샤프트 매출만 17억6000만원을 올렸고 올해 말까지 56억원, 2008년에는 85억원의 매출이 예정돼 있다. 이번 기술 개발은 크랭크샤프트의 국내 공급 활성화를 동반해 STX엔파코는 물론 주요 엔진제조사의 엔진수주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조선업계의 수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중소 상생협력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선박 엔진 관련 기술은 선박뿐 아니라 발전용 시장에서도 그 수요가 높기 때문에 현진은 기술개발 성과를 매출 확대 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향후 산업기기용 첨단 단조품 개발로 연계시켜 미래 성장 기반으로 다져나갈 계획이다.

 ◇대영코어텍=대구 성서첨단산업단지에 위치한 대영코어텍은 1979년 설립, 지난 28년 동안 오로지 공작기계부품 생산의 외길을 고집해온 공작기계 기술 전문기업이다. 산업단지입주기업으로서는 드물게 회사 앞 탁 트인 전경이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제2공장(대영드림텍)에서는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개발한 머시닝센터의 핵심부품인 자동공구교환장치(ATC)의 테스터가 한창이다. 머시닝센터는 공작물을 고정하고 공구를 자동으로 교체하면서 작업하는 공작기계로, 대영코어텍은 이 기계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ATC(Auto Tool Changer) 유닛 앗세이(UNIT ASSY)를 개발 및 생산하는 기업이다.

 예전의 머시닝센터는 공작물을 가공할 때 여러 가지 공구를 사람이 일일이 교체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자동으로 공구를 교체해 주는 ATC가 개발된 뒤에는 24시간 무인화 작업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국내에는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ATC를 생산하는 업체가 4∼5개사 있다.

 그러나 대영코어텍이 국내 경쟁사들과 다른 것은 ATC의 설계와 가공, 제조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ATC의 핵심부품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툴 포트(Tool Pot:공구를 끼우는 곳)’는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자체개발함으로써 제품을 경량화하고 품질을 대폭 향상시켰다. 이를 통해 원가절감은 물론, 개발기간 단축·수입대체 등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아와 함께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사업으로 개발된 ATC는 품질을 높이면서 원가는 25% 이상 절감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이번 사업은 지난 15년간 쌓아온 꾸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6개월 동안 진행된 개발과정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및 설계 품질관리 등은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대영코어텍은 이를 통해 올해 공작기계 생산분야에서 105억원의 매출(지난해 85억원)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도 두산과 공동으로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인터뷰> 이한구 원일 사장 

 “전자제어 엔진을 개발한 외국 기업을 방문했을 때 전자제어와 친환경이라는 두가지 장점을 갖춘 엔진이라는 점에서 향후 이 시장의 확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 엔진에 사용하는 연료공급장치를 개발하게 된 겁니다.”

 이한구 사장은 원일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듯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이번 사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외부 탓만 하며 기존에 해오던 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위해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이라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이 사업에 대기업의 협력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한가지 아쉽다면 기술지원이 부족했다는 점”이라며 “자동자 메이커가 독자개발하는 자동차엔진과 달리 선박 엔진은 대·중소기업이 협력해 개발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대기업이 선박엔진에 관한 주변 기술을 중소기업에 조언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런 점에서 이번 구매조건부 사업 역시 단기 과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 지속적인 기술 지도를 해주는 방향으로 자리잡혀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이창규 사장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그렇듯 독자적인 R&D투자 여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이 기술 노하우를 갖출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해외 수입품을 대체하는 기술 개발이나 특정 제품의 국내 수급현황에 맞춰 제품 개발에 나서는 것 두가지 정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구매조건부 사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개발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창규 현진소재 사장은 이 사업의 장점을 중소기업의 독자적 R&D를 위한 중간 가교 역할로 정의하면서 “따라서 중소기업의 R&D와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러한 정부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사업 성공에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대기업 CEO의 사업참여 확약이나 보증을 갖춘 사업에 대해서는 선정 과정에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필요성을 기본으로 삼아 대기업도 절실히 원하는 진정한 상생 기술개발 사업이 늘어날 때 이 사업의 질적 확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인터뷰>정태호 대영코어텍 사장

  “품질과 가격 경쟁력만 갖추면 대기업을 통해 시장을 쉽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의 상생협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정태호 대영코어텍 사장(50)은 “그러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체 모델을 개발, 사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 “자체 모델로 CAM50 ATC 유닛 앗세이와 특수 수지형 BT40 유닛앗세이를 개발 신뢰성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며, “테스트가 끝나면 해외 공작기계시장에 본격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대구기계부품연구원과 함께 ATC의 핵심인 툴 포트를 현재 BT 툴 포트에서 HSK, CAPTO 툴포트 사양으로 개발했으며, 향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조만간 ATC 뿐만 아니라 공작기계를 자체 생산하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며, “향후 몇 년 안에 설계에서 부품 및 공작기계 자체생산에 이르는 종합 공작기계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정재훈기자@전자신문,jhoon@etnews.co.kr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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