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소설 같다”

 “옷 벗으시죠.” 공무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공무원과 한 번이라도 점심식사를 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밥상에 앉은 후 거추장스러운 상의를 벗으라는 배려의 말이지만 듣는 이에 따라 다르다. 아무 뜻없이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만두라’는 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대부분 배려의 말을 ‘그만두라’는 말로 해석할 바보 같은 공무원은 없다. 단지 순간을 넘기는 자조섞인 유머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공무원 생활이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파리목숨’이 되는 현실을 비꼬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평생을 공직에 몸바쳐오다 하루 아침에 공중으로 붕 뜨는가 하면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조직이다 보니 잘 나가는 사례도 있다. 정권의 측근으로 발탁돼 최고위 공무원으로 ‘입신양명’하는 경우도 있다. 극히 드문 경우고 운대가 맞아야 한다. 그래서 공무원을 두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쓴다. ‘칠’이나 되는 운을 잡기 위해서 가급적 옷을 벗으면 안 된다. 인사권자의 가시권에서 벗어나면 발탁의 운을 맛볼 수 없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경구(警句)가 공무원 사회에서는 금과옥조다.

 공무원으로 승부를 볼 사람이면 티끌이 없어야 한다. 공무원 재산등록에 인사청문회까지 하는 마당이다. 자그마한 티끌 하나가 공든탑을 무너지게 할 수 있다. 평생 ‘민족과 국민’을 위해 일했다고 자부하더라도 한순간 삐끗하면 오명을 뒤집어 쓴다. 다분히 정치적인 작전에 휘말리는 경우다. 정치의 울 안에서의 도덕의 빈틈은 바로 공격 포인트다. ‘능력’보다는 ‘도덕’으로 물고 늘어지는 편이 득점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근 비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공무원 사회도 술렁인다. 정치세력의 흙탕물이 온통 사방으로 튀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소설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대통령의 ‘소설 같다’는 말은 소설같이 들리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다. 이례적인 사건을 창작하고 드문 경우를 현실화한 것이다. 평범한 얘기는 소설적 가치가 없다. 그런 의미의 소설은 맞다. 하지만 모든 검증을 끝낸 최고위 공무원의 ‘소설 같은 이야기’는 공무원 사회를 더욱 위축시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평범하게 산다. “돈을 벌 것 같았으면 공무원 시작도 안 했다”는 공무원의 말처럼 돈버는 직업도 아니다. 정권의 부분집합에 들어 승진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정치권력과 그리 친하지도 않다. 혹여 능력이 돼도 공직자라는 이유로 골프 한 번 제대로 못 친다.

 ‘철밥통’으로 불리던 것도 옛말이다. 자정이 넘어서도 불꺼지지 않는 청사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과거 공무원의 이미지를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천직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일만 하는 다수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소설 같은’ 사실들이 공직 사회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기 때문에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배설하듯 쏟아내는 수많은 말은 더욱 그들을 힘빠지게 한다.

 산업현장을 지원하는 경제부처의 공무원에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수출도 챙겨야 하고 기술개발도 지원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한시도 딴짓을 할 겨를이 없다. 또 지원군인 그들이 움직여야 현장도 활기가 넘친다. 최고위 공무원이 되는 것도 현장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일에 미친(?) 공무원이라면 굳이 도덕성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공직의 논리’보다 ‘정권의 논리’가 더 긴 생명력을 유지한 적은 없다.

 공무원 사회가 굳이 ‘소설 같은 이야기’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힘써야 한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최후의 검증은 능력이고 심판은 국민이 한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