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관계의 거시성과 미시성

최근 두 분에게 책을 받았다. 모두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역작이었다. 한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황석영씨가 신작 장편 ‘바리데기’를 보내주었는데 소설의 재미와 주제의 묵직함에 이끌려 단숨에 읽었다. 그 다음날 연세대 정신과 교수로 난민문제를 연구해온 전우택 교수의 ‘사람의 통일, 땅의 통일’을 받아 읽었다. 전자는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이고 후자는 분석적인 학술연구서여서 서술방식이 전혀 다르고 저자의 관점도 똑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두 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과 깨달음은 유사한 것이었다.

 바리데기는 지난 십여년간 북한의 기근과 체제위기 속에서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게 된 한 여성의 삶에서 전지구적 이주와 난민문제를 천착한 작품이다. 주인공 바리는 비록 귀하게 보호받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사회의 틀 안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소녀였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적 위기가 심화하면서 아버지의 지위는 무너지고 가족들은 흩어지며 그녀는 마침내 탈북 난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기아와 죽음의 상황을 숱하게 거치면서 주인공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마침내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하지만 그녀가 정착한 곳은 어머니가 있는 고향 북한이나 외삼촌이 간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의 이주민과 빈민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런던이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건이 전개되는 맥락이 구체적이고 그 시공간적 상황도 매우 현실적이다. 북한의 수해와 경제위기, 북중 관계의 변화, 9·11테러에 이르는 최근의 현황이 고스란히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고 탈북이란 주제 자체도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다. 다만 작가는 바리 가족의 고난을 단순히 북한체제의 실패나 남북관계에만 결부시키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세계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설명한다. 경쟁에서 진 체제, 패배한 집단, 낙오한 개인의 삶은 세계 어디서든 유사하며 그러한 실패자를 지속적으로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 현 세계의 모습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의 강인한 삶으로 종교적·인종적·성적 차별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을 읽을 수 있었다.

 전우택 교수의 책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체성·정신건강·스트레스 장애·사회적응도 등에 다양한 사회조사결과를 담은 논문들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여러 조사로 최근 북한주민의 의식도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해타산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와도 같은 집단적 교육으로 내면화된 강력한 집단기억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로 이들이 탈북과정에서 적지 않은 외상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이 스트레스 장애와 연결되며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자신이 살아오던 사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이탈의 경험, 체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떠돌아다녀야 하는 난민의 심리,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생활상의 스트레스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탈북새터민의 숫자가 이미 1만명이 넘었다.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제3국을 오가는 탈북이탈주민의 수는 훨씬 많다. 탈북새터민의 존재는 통일한국의 미래를 미리 테스트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통일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현존하는 체제적, 제도적 모순을 해소해가는 거시적 노력과 더불어 바리와 같은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껴안으려는 섬세한 관심, 미시적 실천이 필수적이다. 세계사적 안목을 갖는 것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애정이 겸비될 때 한반도 통일을 향한 실천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박명규 서울대 통일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 parkm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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