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국산의 위력

 얼마 전 큰딸과 함께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붐비는 사람들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떠밀리듯이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무리 경제가 시들하다한들 그래도 시장은 시장이다. 땀냄새도 나고 인간미도 풍기는 재래시장의 참맛은 느껴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복잡한 시장통을 밀물처럼 쏠려가며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는데 큰딸이 슬리퍼를 사달란다. 여름철도 되고 했으니, 가볍게 신을 수 있는 슬리퍼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자식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만큼 자신감 넘치는 일도 없다.

 의기양양함을 느끼며 신발가게로 들어섰다. 갖가지 모양의 신발들이 즐비했다. 딸은 산뜻한 물방울 무늬의 슬리퍼를 집어들었다. 이윽고 점원이 나와 계산을 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따님이 안목이 있으시네요. 이 많고 많은 신발 중에 국산 신발을 고르셨어요. 우리 가게에서 제일 좋은 물건이에요. 솔직히, 이 가게 나머지 것들은 모두 중국산이거든요.”

 순간 의아했다. 점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게에 빼곡히 들어찬 신발 중에 단 한종류만 한국산이라는 얘기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산이다. 이미 식탁을 비롯해 중국산이 생활의 95%를 점령했다고는 하나, 이건 해도 너무 하다 싶었다. 점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남대문 시장에서 신발을 팔고 있지만 AS는 확실합니다. 혹시 하자가 있으면 언제든 교환해 드릴게요. 그런데 이 슬리퍼 수없이 팔아봤지만 품질 때문에 교환해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역시 한국산이 품질은 좋습니다.”

 필자의 기억 한구석에 ‘국산은 싸구려’ 인식이 아직도 웅크리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탓일게다. 그 시절, 고장 안나고 시간 잘 맞는 일제 세이코 시계가 부러웠다. 일제 코끼리 밥통은 있는 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희귀한 보물로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메이드 인 코리아’가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을 능가한다. 국산이기 때문에 강추(?)하는 점원의 말에서 ‘국산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나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은 국산 폄하의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착각’이었는지, 새삼 반성하게 됐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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