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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독자브랜드로 승부
필자가 2002년 봄 분당의 조그마한 오피스빌딩 2층 한켠에 종업원 10여명을 모아 유비컴을 설립할 당시, 휴대폰업계는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중국 휴대폰 특수를 겨냥해 우후죽순처럼 국내 휴대폰 벤처기업들이 만들어지던 열풍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현대전자, 큐리텔 시절부터 수 많은 휴대폰 벤처기업들의 명멸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한가지 소신을 세운 것이 있었다. 휴대폰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면 반드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할 때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대기업이 들어가지 않는 시장에 들어가자. 둘째,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자체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필자가 관심있게 탐색했던 시장이 바로 CDMA450 시장이었다.
물론 2002년도 당시만 해도 전세계에 CDMA450 사업자라고는 고작 루마니아와 러시아 지역 사업자 두 개에 불과했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틈새시장으로서 CDMA450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었다. 우선 CDMA450은 투자비가 적게 들어 이제 막 통신망을 새로이 구축해야 하는 대다수의 신흥 국가들이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인도 같은 거대 신흥국가보다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아세안, 동유럽,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었기에 대기업이 전략적으로 파고들기에 껄끄러운 시장들이었다. 더구나 국가 별로 사업자의 요구가 다양해서 이를 일일이 대응해 줄 만큼 한가한 대기업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필자는 바로 이런 시장이야말로 유비컴이 공략해야 할 첫 번째 시장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설립 후 얼마 되지 않아 필자의 믿음을 현실로 펼쳐보일 기회가 다가왔다. 퀄컴의 자회사로서 세계 최초 CDMA450 사업자인 루마니아의 ‘인컴’이 새로운 단말기를 개발할 회사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 모 대기업에도 개발 의뢰가 왔으나, 기능 요구사항이 많아 고개를 흔드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 제품은 기존의 CDMA450 단말기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차세대 제품이었다.
유비컴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차세대 제품인 만큼 주요 부품들이 시장에 나와있지 않았지만, 유비컴 특유의 기술력으로 퀄컴의 미국 엔지니어조차 놀라게 할 정도의 완벽한 품질과 적시 개발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퀄컴은 유비컴을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CDMA450 단말기 업체로서 세계 각국의 통신 사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 결과 또다른 CDMA450 메이저인 러시아 사업자가 필자에게 연락을 했다. 유비컴이라는 브랜드로 자기들에게 직접 신제품을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금 지급 조건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물론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수 직원들이 개발 용역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하는 회사로 남기를 요구했고, 그나마 일부 간부들은 시기적으로 이르다, 2∼3년 뒤 독자 브랜드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필자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 오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2004년 7월 유비컴 최초의 독자 브랜드 모델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최고급 폰으로 출시됐다. 바로 이것이 지난 3년간 CDMA450 세계 시장 1위를 고수한 유비컴의 출발이었다.
필자는 바쁜 해외 출장 중이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현지 휴대폰 매장에 꼭 들리곤 한다. 유비컴 로고가 선명한 우리 제품이 당당히 진열대에서 현지 소비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빠듯한 출장 일정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짐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곤 한다. 유비컴이라는 브랜드가 세계적인 이름으로 자리매김하는 그 날까지 우리의 노력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ejkim@ubiqu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