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지고 98%를 움직이는 사람.’최고정보책임자(CIO)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다. 대다수 기업의 IT예산은 2% 정도다. 더러 5∼10% 하는 곳도 있으나 매우 드물다. IT와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면서 CIO의 어깨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쏟아지는 첨단 IT 때문에 업무량이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아졌을 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까지 요구받고 있다. IT예산 절감과 안정적 시스템 운용은 ‘기본 사양’에 불과하게 됐다.
이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더 이상 IT비용 절감 운운하는 CIO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보다는 회사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공헌하기를 더 바란다. 이는 IBM이 지난해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결과에 따르면 세계적 기업 CEO는 제품과 서비스 프로세스 혁신보다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CIO에게 더 원하고 있다. 몇% 안 되는 IT예산을 아끼기보다 나머지 98%의 회사 매출 신장에 더 집중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CIO에게 요구되는 ‘시대 정신’이다. 또 이 시대 정신은 CIO와 전산실장을 가르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즉, CIO는 회사 비즈니스 성장에 매진하는 반면에 전산실장은 IT예산 절감과 가용성 99.9%라는 ‘레거시’에 더 중점을 둔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라는 CIO의 시대 정신은 IT보다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흐름을 낳고 있다. 세계 컴퓨팅 시장 리더인 IBM은 이미 몇 년 전에 이런 경향을 간파, 거금을 들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를 인수하기도 했다. 테크놀로지 대가였던 IBM은 비즈니스 전문성을 보충하기 위해 PwC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HP인들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다. 얼마 전 한국HP는 IT시대가 가고 BT(Business Technology)시대가 왔다면서 “기술이 단순히 비즈니스를 뒷받침하는 수준을 넘어 비즈니스 자체를 가동하고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역할을 하게 됐다”고 했는데 이는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들어 공석이 된 CIO 자리를 기존처럼 외부 컨설턴트 대신 회사 내부에서 고용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IT보다 현업 업무라는 비즈니스가 더 중요해서이다. 이 같은 시대 정신에 부합한 CIO는 ‘변화의 전도사(change agent)’로 불리며 국내외에서 회사 성장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눈을 ‘우리’로 돌리면 우린 아직 시대 정신에 투철한 CIO보다 ‘전산실장’이 많은 듯하다. 시대 정신을 간과한 전산실장이 있는 곳에서는 IT가 변화의 도구가 아니라 ‘블랙박스’로 전락하고 만다. “(IT부서에서) 엄청난 돈을 갖다 쓰는데 도대체 (블랙박스처럼)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는 CFO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요즘의 기업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수도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협업이 필수로 돼가고 있다. 협업은 IT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며, IT가 제대로 통합돼야 협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IT를 ‘기본 스펙’으로 하고 있는 CIO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IBM은 CIO 수준을 유틸리티(utility)·파트너(partner)·이네이블러(enabler)의 3가지로 나눈다. 북미 선진국 CIO는 대부분 파트너와 이네이블러 수준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 전산실장 수준인 유틸리티 단계가 많다. 비용절감에 급급한 전산실장보다 해박한 비즈니스 업무에 뛰어난 네트워크 능력을 갖춘 CIO가 많아져야 한다. 이것은 CIO가 CEO로 가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 IT가 선진화되는 길이기도 하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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