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과학기술 공약의 승화

 장길수 논설위원



 한나라당 대권 후보의 선거공약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현실성을 놓고 날카로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 페리 공약도 도마 위에 올랐다. 두 대권 주자가 내놓은 한반도 대운하와 열차 페리 공약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대중성에만 영합하는 공약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한나라당 대권후보의 공약을 폄하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범여권에서는 언제쯤 그럴듯한 공약을 내놓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한반도 대운하나 열차 페리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왜 과학기술분야에서 이처럼 대중적인 관심을 끌만한 이슈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7%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산업공동화 현상을 막으려면 한반도 대운하나 열차 페리 같은 공약보다는 과학기술부문에서 꿈과 비전을 주는 공약들이 나와주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기위해선 차세대 성장 엔진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뤄져야 하며 대권주자들의 공약 역시 이 부문에 집중돼야 한다. 물론 과학기술부문에서 국민에게 조명을 받는 공약을 발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한국경제와 과학기술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아내야 하고 꿈과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권 주자가 내놓은 과학기술분야의 공약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기존의 과기계 담론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의 건설이나 포스트 나노시대를 겨냥한 ‘펨토과학’ 기술 육성 등을 과학기술분야의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공약만으로는 아직 실체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 IT·BT·NT·CT 등 미래 수종산업을 육성하고 ‘신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별로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반도체 이후 차세대 성장 동력을 창출할 대형 프로젝트를 발굴하겠다는 공약 역시 구체성이 부족해 보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과학기술혁명 7대 전략을 내세웠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 과학기술인 처우개선,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특구 육성, 과학기술연구의 글로벌화 등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기존의 정부 정책에서 크게 진전됐다는 느낌은 들지않는다.

 과학기술 부문의 공약은 구색맞추기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대권 주자 역시 과학기술정책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되뇌지 말고 과학기술로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겠다는 각오로 과학기술 부문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과학기술 공약을 놓고 대권주자 간에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그 나물에 그 밥’식의 과학기술공약으로는 어림도 없다.

 과학기술분야에 소위 ‘4+2 법칙’이란 게 있다. 정부와 산하 출연기관이 첨단 R&D분야에 선도적으로 투자하면 4년 후 민간 기업에서 관련 연구가 시작되고 또 2년 후에 비로소 기업의 설비투자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이 법칙에서 알수 있듯이 정부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그동안 민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4+2 법칙이 과학기술계에 여전히 유용한 틀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전문인력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두뇌유출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첨단 기술에 대한 선도투자→민간 기업에의 확산→설비투자 확대→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계의 현안과 문제의식을 국민적인 이슈로 승화시키고 해법을 모색하는 진정한 과기대통령을 보고 싶다.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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