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디어가 많다 보니…

 각종 미디어가 봄꽃 휘날리듯 난립하는 시대다.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그 개념도 기존 잣대로는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UCC라는 게 유행하면서부터는 미디어 제공자와 미디어 수용자의 구분도 쉽지 않게 됐다. 미디어로서 가치가 흔들리고 수용자는 소비자로서의 권익을 주장하지 못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얼마 전 한 케이블TV에 출연했던 여자 코미디언이 생방송 도중 울면서 무대를 뛰쳐나가는 사고를 쳤다. 이제 음악을 하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우스운 사람(코미디언)으로만 보는 게 화가 났단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만 보여졌던 그가 웃기는 사람으로 보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닌가. 그를 보면 그가 출연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사모님’ 캐릭터만 떠오르는데 음악가를 떠올려 달라니…. 그러니까, 그날 친 사고는 이제부터는 코미디언이 아닌, 음악가로 대우해 달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이 코미디언은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팬들에게 그렇게 시위할 권한이 있고 팬들 역시 그런 요구를 받아줘야 하는 걸까.

 오락채널 tvN을 운영해온 CJ미디어의 스카이라이프에 대한 송출중단 사건만 해도 그렇다. CJ미디어 측의 송출중단에 대한 해명이 가관이다. 200만 가입자에 ‘불과’한 스카이라이프에 tvN을 내보내면 내보낼수록 손해라는 거다. 그래서 1400만 가입자를 가진 케이블TV를 통해서만 송출하겠다는 얘기다.

 엊그제 CJ미디어는 다행히 송출을 재개했지만 앞으로 나올 방송위원회의 중재안이 내키지 않으면 다시 중단해버릴 태세다. 스카이라이프 측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송출 중단이 공정거래 원칙에 어긋난다며 분통을 터트리지만, 안타깝게도 스카이라이프가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방송위의 중재안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런데 즐겨보던 TV 화면에 어느날 갑자기 ‘방송사 사정으로 송출 중단’이라는 메시지가 떴다고 치자. 그 막막함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매달 꼬박꼬박 수신료를 내온 가입자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어디 그뿐인가. 원치 않게 플랫폼사업자와 방송채널사업자 간 다툼 속에 끼이게 된 가입자는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이번 사건처럼 방송채널사업자가 이해관계에 의해 방송 송출을 중단한 사례는 스카이라이프에서만 벌써 일곱 번째다. CJ미디어가 이번까지 4개 채널, 온미디어가 3개 채널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이들 사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다. 모두 재력이 탄탄한 유력 복수 방송채널사업자며 거둬들인 채널들 역시 시청률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정말로 갈등이 생긴다. 만약 당신이 스카이라이프 가입자고 tvN 마니아라면 어찌할 것인가. 스카이라이프 계약을 해지하고 케이블TV에 새로 가입할 텐가. 마이너리티 플랫폼으로 전락한 스카이라이프의 무능을 변호하자는 게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방송채널사업자가 플랫폼사업자에게 벌인 무력 시위다. 결과적으로는 가입자(수용자)에 대한 일방적인 요구고 명령인 셈이다. 아무리 민간 기업이라지만 그래도 방송사업자는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가 많이 생기다 보니 ‘무려’ 200만 가입자(단위가 가구일 테니 시청자 수는 800만쯤 될 것이다)의 시청권을 경제논리로 풀어가는 사업자까지 생겨난 꼴이다.

 권위도 없고 지향해야 할 가치 기준도 없는 게 다 미디어 시대의 논리라면 수용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그 질적 수준이 코미디 축에도 끼지 못하는 노변정담에 불과하다. 방송위원회의 현명한 중재를 기대한다.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