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미숙 헤리트 사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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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베리텍 출범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케이크를 커팅하는 모습. 왼쪽부터 임주환 4대 ETRI원장, 정선종 2대 ETRI 원장, 필자

(2)여성창업 1호가 되다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99년에 찾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지나, 벤처 붐이 회오리바람처럼 한국 사회 곳곳에서 들끓던 시점이다. 98년 한 차례 구조조정을 겪고 뒤숭숭한 분위기였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역시 창업 바람에 휩싸여 있었다. 동료가 하나 둘씩 떠나갔다.

 99년 어느 날 ETRI의 한 화장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런저런 ‘화장실 수다’를 이어가며 신세 한탄을 하던 차에 한 선배가 창업을 제안했다. ‘그래 어차피 일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ETRI가 여성에게 최고의 직장인데 왜 어렵게 창업하느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2000년 1월 퇴직금 등을 톡톡 털어 1억8000만원 자본금으로 대전 KAIST의 창업지원센터 내 15평 사무실에서 ETRI 여성창업 1호 기업인 베리텍(이후 헤리트로 사명 변경)이 탄생한 것이다.

 덕분에 충남대에서 받던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는 수료에 그쳤다. 그러나 창업하자며 ‘꼬드겼던’ 선배는 이후 팀장으로 발령받는 바람에 정작 창업 멤버에 합류하지 못한 걸 보면 각자의 길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창업 첫 해는 ETRI의 용역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용역개발은 결과물만 잘 내주면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2000년 12월 전직원(6명)을 모아놓고 “운영비를 벌기 위한 용역 개발은 하지 않겠다. 적어도 한국에서 1등 할 수 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로 차세대통신서비스 인프라의 국제표준화포럼인 ‘팔레이’에 가입하고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 문을 닫겠다는 각오로 전직원이 매달렸다. 하지만 인력·자금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로 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어 그럴 수도 있었겠으나 창업 초기에 나의 조급하고 불안한 심정을 달래고 중심을 잡았던 ‘고무줄 리더십’과 ‘풍선 리더십’의 생생한 기억이 생각난다.

 고무줄 리더십은 초기 제품 개발에 매진할 시기에 필자가 경험한 심리 상태인데, 직원들이 양쪽에서 긴 고무줄을 잡고 사장이 그 가운데에 서서 앞을 향해 달린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고무줄을 잡은 직원들이 최대한 빨리 따라올 수 있는 속도 범위에서 뛰어야지 사장만 조급해서 뛰쳐나가다 보면 직원들이 따라오지 못해 고무줄을 놔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풍선 리더십은 창업 초기에 안정된 용역 개발을 접고 자체 제품 개발을 선언할 때 생각했던 것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풍선 불기’에 비유해 본다면, 풍선을 크게 불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확 불어댄다든지 무리하게 바람을 넣으면 터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도, 사장이 아무리 빨리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더라도 ‘현실’과 ‘위험요인’을 잘 고려하면서 신규 투자를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엔지니어 출신 애송이 CEO의 길은 시작됐다.

 mshan@heri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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