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학원 없이는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

Photo Image

“반갑다, 친구야!”

 10, 20대 때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는 기회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인지 어떤 친구는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인생을 겪은 만큼 배가 나온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젊었을 때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이 나무에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활활 살아난다.

 지난 주말에는 대학 시절 참가했던 야학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던 세 살 아래의 후배 부부 초청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20대 초반에 만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만큼 무척 반가웠다. 이제는 가정을 꾸려 어엿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고 기뻤다. 여덟 살과 네 살배기 두 딸을 거느린 그를 비롯해 야학에서 함께 지냈던 형, 누나, 동생들은 어느새 적게는 한 명, 많게는 무려 네 자녀를 둔 부모가 돼 있었다. 중학생부터 갓난아이까지 십수명의 아이들이 모였는데 이방 저방을 다니면서 금세 친해졌는지 연방 웃으며 어울려 놀았다.

 부모라는 종족은 다 비슷한가 보다. 그리운 옛 친구들끼리 기억을 더듬어가며 술잔을 돌리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밑천이 떨어지자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만난 선후배들도 다 비슷한 연배라서 그런지 아이 키우는 이야기가 거의 빠진 적이 없었다.

 각자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종류도 끝이 없고 가르치는 것도 무척 많았다. 우리 부부 역시 별다른 곳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에게 영어·피아노·수영·과학실험·체험학습·플루트·바이올린, 축구 등을 배우라고 보내고 있지 않은가. 흥미로운 것은 나를 포함한 남자 대다수는 “애들을 왜 이렇게 키우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여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남자들은 도대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옛 친구끼리도 모습이 달라질 만큼이나 세월이 많이 지난 탓일까. 우리 어릴 때와 요즘 아이들의 세상은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뀐 느낌이다. 동네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공터에서 공놀이하는 풍경은 이제 영화나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교육기관에 돈을 내고 보내야만 축구나 수영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축산 농가의 소 젖짜기나 갯벌 체험조차 어린이 캠프 같은 교육프로그램 참가비를 내야만 할 수 있다. 태어나 말을 배우고 글을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영어는 이제 기본이다. 이미 영어유치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넘어 중국어유치원까지 성행한다고 한다. 대학 입시학원뿐 아니라 특목고 입시, 이를 위한 중학교 입시 학원까지 오프라인, 온라인 가릴 것 없이 광풍에 비유할 만큼 특수를 누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이 훗날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야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커서라도 국가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면 더 많은 학원이 생긴들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 파악을 못하는 ‘바보 아빠’라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이 더욱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정치권에서 공방 중인 교육 3불(不) 정책의 호불호를 떠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자립할 수 있는 여백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꺼내니까 “그러면 애들을 창의력학원에 보내야겠네요”라며 맞장구를 치는 부모도 있었다.

 만약 아인슈타인, 에디슨 같은 인물이 요즘 한국의 아이들처럼 학원 홍수 속에서 교육받고 자랐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 명문대학이나 내로라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는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될 즈음에는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조차 학원이나 캠프에 가서 돈을 내고 배워야만 가능하게 될 것 같아 불안해진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자라도록 도와줘야 한다.

◆김종래 파파DVD 대표 jongrae@papadvd.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