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영국의 인상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문화·경제·정치 모든 면에서 유럽의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짙다. 당연히 시스템도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신·방송 등 일부 산업 정책은 영원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일반인에게도 ‘신사의 나라’로 불리며 이미지도 평균 이상이다. 좀 부정적인 요소라면 물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국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에 따르면 영국만큼 우리에게 왜곡된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먼저 영국은 선진국이지만 철저한 계급 사회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다. 일반 중소 도시에도 왕족·귀족 출신은 별도의 ‘상류 사회(하이 소사이어티)’를 형성하고 대단히 폐쇄적이다. 게다가 ‘짬뽕 문화’다. 유럽의 인종 집결지가 바로 영국이다. 의료와 노후 등 사회보장 제도가 잘돼 있는 데 반해 세금은 살인적이다. 공립과 사립교육 수준 편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기업 환경도 최악이다. 노동당의 입김이 강해 효율 위주로 경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일부 법인세를 삭감했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법인세 비중이 높다. 산업구조도 취약하다. 이미 통신·수도·전기 등 사회 인프라를 외국 기업에 대부분 매각했다. 기초연구 분야의 경쟁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성장동력산업을 찾기가 힘들다. 그나마 금융이 영국 경제에 불을 지피는 데 기름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영국은 10% 남짓의 엘리트가 이끌어 간다는 말이 정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국민 대다수도 10%의 ‘정해진’ 리더 그룹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만큼 가진 자의 책임과 희생은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여 주기 위한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영국 현지 주재원에 따르면 평범한 일반 기업 행사에서도 기부와 모금 행사는 필수라고 한다. 초창기 영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이런 문화 차이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신분·부·능력 등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은 없다는 게 허술해 보이는 영국 시스템의 숨은 경쟁력이다. 우스갯소리로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우리 정서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비교 우위’가 있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10년 뒤 우리와 영국의 미래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런던(영국)=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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