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특허침해 소송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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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블루오션이니 혁신이니 지구촌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 단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전략 혹은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키워드다. 이 낱말의 이면에는 ‘변화’와 ‘효율’ 그리고 ‘고객’이 자리 잡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의미기도 하다.

 국책 연구원도 예외는 아니다. ETRI 역시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최초로 출시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최초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의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가 헛되지 않도록 항상 시장과 고객의 요구를 살피고 효율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스스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시킨 기술을 권리화하고 이를 지키는 것은 기술개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기술의 합당한 권리화와 안정적인 유지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연구원들은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과도 같은 기술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전문가는 과연 누구인가.

 지난해 11월 특허침해소송의 변호사·변리사 공동대리를 골자로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개정안은 기술에 대한 사실 확인을 통한 특허권의 침해 여부 판단이 핵심인 특허침해소송에 관해 기술전문가인 변리사가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출 경우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게 함으로써 특허침해소송 당사자인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품질 소송대리 서비스를 소송 당사자인 국민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개정안은 지극히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개정안의 궁극적인 고객은 기업·연구소·학교·발명가 등 기술을 개발하고 발명하는 사람이다. 이들 대부분은 기술에는 전문가지만 해당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피땀 흘린 기술이 소송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특허분쟁이 빈번해지는 현실에서 고객의 기술을 안전하게 지켜줄 더욱 경쟁력 있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허권의 확보 및 분쟁을 원활히 대리하는 전문가라면 기술과 법 절차 모두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기술과 법 절차 지식을 겸비한 전문대리인으로 변리사 제도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에게는 변리사의 역할이 자동으로 주어지는데, 사실상 변호사에게서 만족할 만한 기술 지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허침해소송도 결국 사건 판단의 본질이 특허권을 형성하는 기술의 분석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변리사에게 변호사와 공동으로 침해소송을 대리하게 하자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특허침해소송의 변호사·변리사의 공동대리제도는 기술선진국인 일본·영국·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기술격차를 점점 좁혀오고 있는 중국에서는 변호사·변리사의 공동대리뿐만 아니라 변리사의 단독대리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기술선진국이 공동대리제도를 시행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허침해소송 서비스 고객의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아마도 전문기술을 모르는 변호사에게만 소송대리를 맡기고 편하게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문기술을 모르는 변호사에게 해당 기술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변호사가 설령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소송 진행 중에 나오는 돌출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고객이 정당한 비용을 들이고서도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얻지 못한다면 그 서비스는 분명 문제가 있다. 고객이 외면하기 전에 먼저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외형적으로는 이미 특허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다. 특허선진국에서도 항상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내실을 다져서 기술강국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연구에 전념하고, 개발된 기술을 전문 대리인이 확실히 관리해 줄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궁극적인 경쟁력은 시장창출과 고객만족이다. 특허침해소송 서비스의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귀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시대적, 국제적 요구이자 국민의 요구기 때문이다.

◆김현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테라전자소자팀장 htkim@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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