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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끼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명절에만 특별하게 쌀밥과 고기를 먹던 우리가 이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영양실조로 병약했던 사람이 너무 많이 먹어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생수를 구입해 마시고 웰빙 바람을 타고 아무리 비싸더라도 유기농산물을 찾는다. 도로는 넘치는 자동차로 상시 체증이고 첨단제품과 명품을 찾는 사람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신제품의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우리나라 사람 모두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 불행히도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발표한 전 세계의 178개국의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2위로 나타났다. 또한 UNDP에서 전 세계 국가의 삶의 수준을 조사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26위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복지재단과 대한민국 학술원이 서울·뉴욕·런던·파리·도쿄·베이징 등 세계 10대 주요도시의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서울이 최하위였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영국 조사에서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2900달러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인 바누아투다. 그러나 이미 고도의 경제를 경험한 사회는 그와 같은 사회로 돌아가도 행복할 수는 없다.
심리적이고 개인적·주관적인 면을 제외하고 보면 보편적인 사회의 행복지수는 삶의 질과 사회적인 신뢰지수가 높아질 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환경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아플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하고, 안심하고 음식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시설물들이 안전해야 한다.
그동안 과학기술자들은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내고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생산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았다. 그 결과 각종 환경오염과 안전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러한 보건·환경·안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전 지구적인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은 제품에 대한 환경규제를 강화해 역내 제품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최근 180여종의 대기유해물질 규제관리를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과거 경제성장 중심의 과학기술 및 산업정책을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부는 그동안 부처별로 추진해오던 삶의 질 관련 기술정책을 통합하고 ‘삶의 질 관련 기술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이 계획에서는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고 건강하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과학기술정책의 중심목표로 삼고 있다. 쾌적한 삶을 위한 친환경 신기술 개발, 안전을 위한 자연재해 극복 및 조기 위기 감지기술, 편리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바이오, 신약 및 차세대 의료기기 개발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어느 한곳에서만 열심히 연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비교적 새로운 분야며, 그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기술이다. 또 새로운 측정기술이나 표준이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부는 삶의 질 관련 기술개발을 통합해 범부처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다. 과거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듯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제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관심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만 하는 국가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khchung@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