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노준형표` 통신정책

 외유내강.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을 가리키기엔 딱 맞는 말이다. 상대방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도 미소를 잊지 않는다.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그러면서도 역대 장관 이상의 ‘포스’를 보여준다. 그의 힘은 합리적인 사고와 객관적인 판단에서 나온다. 공사를 구분할 때엔 냉혹할 정도다.

 노 장관이 드디어 통신정책에 색깔을 드러냈다. 3·15 통신정책 로드맵이다.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는 역대 장관들도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성 강한 바로 전임 장관도 통신정책에선 색깔을 못 냈다.

 통신판이 어떤 동네인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이번엔 달랐다. 조금씩 불만을 드러냈지만 방향 자체에 대해 거의 모든 사업자가 토를 달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이 그림을 잘 그렸다. 무엇보다 결정권자인 노 장관에 대한 믿음이 더해졌다.

 로드맵에 드러난 그의 통신 철학은 시장원리다. 시장원리에 따라 투자도 하고 요금도 내려 소비자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게 기본 골격이다. 사업자들은 더는 규제에 기대지 말고 실력으로 승부를 걸라는 얘기다.

 후발사업자로선 조금 야속하다. 그러나 비대칭 규제를 할 만큼 했으며, 선발사업자들이 역무 침해니 뭐니 하면서 후발사업자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정책 목표라는 설명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KT와 SK텔레콤 등 선발사업자들은 시장을 독식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자칫하면 텃밭도 내줘야 하는 게 새 통신정책이다.

 찍어누르지 않고도 통신판을 군소리없게 만든 것도 노준형표 통신정책의 덕목이다. 후속 조치가 남았지만 지금까지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호나우두급 플레이를 보였다. 그래도 2%가 부족하다. 사업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 논리에 따라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이지만 그럴 만한 신시장이 보이지 않는다. 있다 하더라도 방송과 같이 정통부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시장이다.

 새 통신정책이 가뜩이나 어지러운 통신판을 더욱 아수라장을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KT와 SK텔레콤은 최근 볼썽사나운 대결을 보였다. 불공정 행위를 통신위원회에 경쟁적으로 신고하면서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KTF와 KT아이컴 등 합병 인가 조건 위반을 들먹였다. 아무리 밉다고 해도 진도가 너무 나갔다. 오죽했으면 통신위 제소에도 무고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진담 섞인 농담이 나올까. 사업자들 스스로도 원치 않는 진흙탕 싸움이다.

 새 정책으로 사업자 간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문제는 사업자들이 새 비즈니스 창출보다는 남의 가입자를 뺏는 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책 목표인 투자 활성화나 소비자 이익보다 서로 흠집 내기에 골몰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업권이라는 ‘떡’을 주고 투자를 강제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달라진 통신판이, 한미 FTA 협상 중인 대외환경이 이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국가 경제의 기반인 IT산업을 이끈 통신산업이 그 엔진 역할을 계속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통신정책 당국의 존재 이유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사업자 스스로 엔진에 모래를 끼얹는 결과를 빚어선 안 된다.

 노준형표 통신정책은 일단 방향성만으로 100점 만점에 50점을 땄다. 투자를 적절히 이끌어내고 뻘밭 싸움이 아닌 진정한 서비스 경쟁을 만드는 후속 조치를 내놓으면 나머지 50점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추가 점수는 물론이고 얻은 점수마저 잃을 수 있다.

 통신판이 이미 흐트러졌다. 사업자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도 IT산업 발전의 역군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면서 예전의 활력을 빨리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 희망을 후속 조치를 고민 중인 노 장관과 관료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신화수 u미디어팀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