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병규 아모텍 사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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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자·전기 관련 전시회는 우리의 주 무대였다. 아모퍼스 전시회 출품 사진이다.

(3) 1차 성장기

 지금이야 ‘아모텍’하면 칩바리스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모퍼스 또한 아모텍의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러시아와 제휴를 통해 아모퍼스 기반의 전원용, 노이즈 제거용 코어류를 개발,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을 갖추게 되자, 이번엔 시장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국내 여러 가능성 있는 업체들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다 할 시장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기왕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라면,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자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게 됐다.

 그 때부터 우리는 각종 전자, 전기관련 전시회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일본, 대만부터 멀리는 유럽, 미주까지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다니면서 잠재 고객과 경쟁자를 만났다. 보기에 따라 매출도 없는 기업이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 전시회를 쫓아다니는 것이 소모적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사업의 방법과 방향성을 얻는 중요한 계기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나의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 전시회를 통해 경쟁업체들의 사업방향을 이해할 수 있었고,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사업가로서 아이템의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장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시회의 경험은 필자가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필요한 ‘인식의 전환과 발전’을 가져왔다.

 다년간의 해외 개척활동을 통해 중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한 컴퓨터 전원시장을 1차 목표로 정했다.

 1990년대 중반, 컴퓨터 시장은 286, 386 등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호황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고객을 만나 우리 제품을 설명하고, 장점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했으며, 아무리 작은 고객이라도 부르면 달려가 최선을 다해 서비스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매출이 늘어나고, 인지도도 꽤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그 시기는 아모텍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세계시장에 알린 때이기도 하다. 중국, 대만의 많은 사람들은 워낙에 우리 제품이 유명했기에 ‘AMOS(당시 아모텍 제품인 아모퍼스코어의 브랜드명)’를 유명 다국적 기업의 제품으로 아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우리 제품의 불법 복제제품이 중국에 등장하기까지 했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도 10% 안팎까지 올라갔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컴퓨터 시장이 정체기로 접어들면서 아모퍼스 사업도 정체되기 시작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모퍼스 사업을 통해 국제적인 감각과 마인드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몸에 배인 것이다. ‘너희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라는 성경구절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 말로 성공의 원동력일 것이다.

 아모퍼스 사업은 아모텍의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필자 본인에게도 사업 성공과 더불어 세계 선진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었다. 이 소중한 경험은 지금도 아모텍 성장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그렇게 90년대 말 2000년에 들어서며 아모텍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 온 세라믹 재료를 바탕으로 한 제품으로 정보통신 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pkkim@amote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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