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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던 외국의 유명한 회사를 방문할 기회가 생겨 가보면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는 이들 회사 규모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종사하는 반도체 설비나 부품 제조업체 중에는 기술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중소기업이 의외로 많다. 이들이 가진 기술의 시장 크기에 따라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또 중소기업에 머물기도 하겠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이렇듯 특정분야에서 독점적인 기술로 세계를 제패하는 기업이 많고 또 그러한 특정분야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그 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반도체산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효자산업이다. 한 예로 작년 반도체 수출은 374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1.5%를 차지하는 수출 1위 품목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메모리에 편중돼 있으며 자동차나 조선에 비해 설비 및 재료 국산화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천문학적인 수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산업 자체는 국가 전체로 볼 때 이익이 적거나 손해인 예가 많았다.
이 같은 모순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삼성과 하이닉스같이 주로 메모리소자를 생산하는 대기업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기술이나 매출·이익규모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이 원할하게 생산할 수 있게끔 재료나 생산설비를 제공하는 후방산업이 매우 취약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중소 벤처기업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반도체산업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소 벤처기업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소자를 생산하는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설비나 재료를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상당부분 무역역조의 원인이 된다.
다른 한 가지는 메모리반도체 외에 통신이나 가전·자동차·산업용 반도체 생산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이러한 비메모리 반도체 수입에 수백억달러를 쓰고 있는 실정이며 무역역조의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반도체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다품종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이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고, 세계적으로도 중견기업이나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은 디자인 하우스 등에 의한 수탁생산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국내 중소 벤처기업이 해야 할 일로 생각되지만 이 또한 미미하기 그지없다.
메모리반도체는 미국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우리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상당히 현실성이 있는 부분이다. 반도체 소자 생산과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생산설비, 재료 등 후방산업을 비교해볼 때 이러한 이동속도는 후방산업이 훨씬 느리다. 실제로 세계 10대 설비업체를 보면, 미국과 일본 업체가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메모리반도체 생산의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줬지만 설비나 재료에 관한 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자생산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 우리에게는 뭐가 남아 있을까를 생각하면 답답할 따름이다.
반도체 무역역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서 그 역할은 분명 벤처기업에 있다고 생각하며 많은 벤처기업인의 분발을 기대한다. 다만 한 가지 이러한 벤처기업을 안을 수 있는 수요자, 즉 대기업이 포용력을 발휘해 국내 후방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사회에 환원하는 이상의 의무라고 여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많은 국산화 업체가 외국에는 설비를 팔지만 국내에서는 고객에 따라 라인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나라에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저변에 깔려 있으며, 이들은 사회를 안정되게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섬이나 해변을 거닐다 보면 방풍림을 목격하게 된다. 이들이 없으면 시야가 트여 경관은 좋을지 몰라도 해일이나 태풍이 올 때 직접 타격을 받게 된다. 환난의 시기에 중소 벤처기업은 대기업과 사회에 훌륭한 버퍼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더욱 합리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중소 벤처기업의 육성에 나서야 할 때다.
◆김종현 유니테스트 대표 loisoh79@uni-t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