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건희 회장의 진정성

 이건희 회장이 아무래도 작정을 한 것 같다. 평소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것조차 기피하던 그가 최근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즉답을 서슴지 않고 발언 수위도 기대 이상이다.

 지난 주말에도 또 한 건 터뜨렸다.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다 참석한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에는 큰 혼란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과 일본에 낀 우리경제를 샌드위치에 비유한 1월 발언에 이은 두 번째 경고다. ‘샌드위치론’과 비교하면 이번 발언의 수위는 거의 직격탄 수준이다. 아주 마음먹고 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이를 두고도 말이 많다. ‘경제 위기론’을 앞세워 뭔가 다른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 첫 번째다. 예를 들면 일등 삼성에 대한 공정위나 일반 국민정서에서 나오는 압박을 좀 줄여보고, 더 나아서는 ‘경제 제일주의’를 부추겨 재벌에 대한 사회 의존도를 좀 더 높여 나가겠다는 노림수가 있다는 해석이다. 정권 말이라는 시점을 고려하면 뭔가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일종의 음모론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 회장이 줄곧 견지해온 비정치적 성향에 비춰볼 때 너무 거리가 있어 보인다. 두 번째는 이 회장 특유의 비관론이 초호황 때에도 전 직원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고성장을 유지했듯이 이번에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시각이다.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지만 지금 삼성의 상황이 그때처럼 엄살을 부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순이익은 8조원 정도로 전년의 11조원보다 무려 3조원이나 줄었다. 또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 주력업종도 불안하다. 간판상품인 휴대폰과 반도체·LCD가 경쟁국들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예전 같지 않다. 휴대폰은 이미 상승세가 꺾였고 반도체·LCD는 낸드플래시메모리의 급락세가 보여주듯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경기사이클에 전전긍긍이다. 간판상품이 이 정도면 다른 품목은 말할 것도 없다. 생활가전 사업은 존폐 여부가 회자될 정도다.

 삼성은 현재의 포트폴리오로 더는 호황을 이어갈 수 없다. 이 회장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이를 타개할 마땅한 대안도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단일시장으로 1조원 이상을 만들어낼 만한 아이템을 찾으라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더는 단일 아이템으로 1조원 이상의 수종산업을 만들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바로 우리경제 위기는 기존산업이 정체국면으로 지나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보다 이를 메워줄 만한 새로운 산업이 없다는 데 있다. 이게 이 회장이 우려하는 문제의 본질이다.

 그럼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컨버전스 시장이다. 산업 간·기기 간 결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만 어렵다. 미래의 먹거리인 신규시장 만들기보다는 지금의 우리 밥그릇(관할 영역)을 지켜야 하는 게 우선인 정부 부처의 벽 때문이다. IPTV뿐 아니라 u시티, e러닝 등 기존산업에 IT를 접목해 조 단위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고 하면 한결같이 이 벽에 막혀 주저앉는다. ‘나라 전체가 정신좀 차리라’는 이번 발언에도 이런 답답함이 짙게 배어 있다.

 평소 이 회장은 200여명의 멘토에게서 조언을 받는다고 한다. 한 명이 말하고 200명이 듣게 만드는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발언이 무게감을 갖는 것은 즉흥적이고 정략적인 정치인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통찰력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 이건희 회장이 어떤 심정으로 5∼6년 후 우리 경제의 대혼란을 염려했을까. 정치인, 경제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해답이 나올 듯싶다

김경묵 편집국 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