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몸짓 만으로 감정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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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작업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네가 그 캐릭터가 되라고 누차 강조했어요. 캐릭터만 살아있다면 공 하나로도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충분하니까요.”

 오는 22일 개봉하는 임아론 감독(38)의 첫번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에는 대사가 없다. 상황 설명을 돕기 위한 내레이션과 의성어, 넘어지고 부딪히는 캐릭터의 몸짓만으로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대사없이 진행되는 76분이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임 감독은 “말 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가 더 진할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그림체가 좋은 건 확실하지만 대사가 많아지면서 캐릭터의 입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고 살아있는 캐릭터가 부족함을 지적했다.

 푸우, 뽀로로의 ‘포비’ 등 애니메이션에 종종 등장한 곰을 다시 등장시킨 이유도 단순한 선과 둔한 캐릭터가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적합했기 때문. 지난 5일 용산 CGV 시사회. 영화상영 전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76분 내내 화면에 몰입하는 모습은 그의 실험이 일단은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임 감독이 2002년 알지애니메이션을 설립하면서부터 기획했던 작품으로 제작기간만 5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20억이란 저예산으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면 고난의 뒷얘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법 한 데도 그는 덤덤했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CF 등 외도도 했고, 성우도 밥 한끼 사주고 섭외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는 큰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고 한다. 임 감독이 공동대표로 있는 알지애니메이션스튜디오의 설립 취지가 ‘정말 괜찮은 장편 하나 만들자’였기 때문. 그래서인지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도 이게 “시장에서 얼마나 먹힐까?”하는 불안감보다는 “이걸 우리가 해냈구나”라는 뿌듯한 마음만 들었다고 한다.

 3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미없는 건 죄악”이라고 말했던 임 감독. 그 말을 할 당시에는 ‘구경꾼’의 입장이었기에 소리를 높였던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빼꼼의 머그잔 여행’ 제작 목적에 대해 “어떤 철학적인 교훈을 주려고 만든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작업할 때도 처음 기획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한다면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용용’이도 최초 시나리오에서는 없었지만 다양한 시도 끝에 우연히 탄생한 캐릭터다.

 일본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영화제 수상,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초청, 미국 시그라프 초청 등 단편에서 쌓은 프로필과 명성만큼이나 그의 첫 장편에 대한 업계의 기대는 크다. 그 역시 이런 기대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타격이 크지는 않겠지만 업계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낄 것”이라며 최소한 다른 작품이 나올 때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관객을 내심 기대했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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